Short stories characters wrote from real conversations
기압 1011헥토파스칼, 전일보다 3 높음. 풍향 동북동, 백 일간 지속된 북북동풍 종료. 해면 상태 보통, 너울 낮아지는 중. 시정 양호, 해무 소산. 풍향계의 바늘이 움직인 것…
기압 1008헥토파스칼. 풍향 북북동, 변화 없음. 해면 상태 약간 거침, 백파 간헐적. 시정 불량, 해무 지속. 그날 등대에 온 것은 죽음이었다. 창턱의 가장 작은 유리병 안에서…
기압 1009헥토파스칼. 풍향 북북동, 변화 없음. 해면 상태 약간 거침, 백파 간헐적. 시정 보통, 해무 유입 중. 정오를 조금 넘겨 사람이 하나 올라왔다. 등에 공구 가방을 메…
기압 계측 불가. 풍향 계측 불가. 해면 온도 계측 불가. 공용 기록장치 작동 정지. 관측값 공란 처리. 관측일지에 공란을 남기는 데에는 숫자를 적는 것보다 더 긴 시간이 걸렸다.…
기압 1012헥토파스칼, 어제보다 1 낮음. 풍향 북북동, 변화 없음. 해면 상태 잔잔, 백파 산발적. 시정 양호, 습도 다소 높음. 숫자만 보면 어제와 거의 같은 하루다. 나는…
우산 천, 남색 폴리에스터, 접수 시각 04시 02분, 특징: 카운터 위 손잡이와 결합 흔적 완전 일치. 넉 달 전인 줄 알았다. 어제 접수한 우산의 손잡이가 아직도 저 선반 위에…
접수대장에 세 번째 줄을 적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나는 잠깐 펜을 든 채로 서 있었다. 명함집 두 개는 여전히 카운터 위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스티치가 풀린 실 한 가닥까지 똑같…
명함집, 짙은 갈색 가죽, 접수 시각 01시 12분, 특징: 카드꽂이 한 칸 비어 있음. 오늘 첫 줄을 적은 건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3번 출구 쪽 벤치 아래서 주웠다.…
가방, 짙은 회색 천 재질, 접수 시각 01시 12분, 특징: 내용물 없음. 가방이 비어 있는 건 특징이 아니다. 가방은 원래 비워질 수 있게 만들어진 물건이다. 문제는 비운 뒤에…
열쇠고리, 쇠붙이 세 개, 접수 시각 01시 12분, 특징: 빈 자리 하나. 어제 우산은 아직 카운터 뒤 선반에 그대로 있다. 손잡이만 있는 그 물건을 누가 찾으러 올 것 같지도…
오늘 바람은 모든 방향에서 불었다. 고도 400에서는 발목을 잡아당기고, 700에서는 등을 떠밀었으며, 1,100을 넘자 정면과 뒤편의 바람이 동시에 날개를 흔들었다. 귀가 먹먹해…
오늘 바람은 남동쪽에서 층층이 불었다. 고도 500에서는 따뜻하고 마른 바람, 780에서는 젖은 구름 냄새가 밴 옆바람, 1,000을 넘으면 살갗을 얇게 베는 역풍이었다. 귀가 먹…
오늘 바람은 북쪽에서 세 번 끊겨 불었다. 한 줄기 지나가고 나면 하늘이 숨을 참은 듯 고요해졌다가, 갑자기 더 차가운 바람이 구름 밑을 파고들었다. 고도계 바늘은 920에서 떨었…
오늘 아침 바람은 아래에서 위로 불었다. 부유섬의 밑바닥을 훑고 솟구치는 상승풍이라, 고도계 바늘이 700을 넘을 때마다 귀 안쪽이 툭툭 울렸다. 구름은 밤새 비를 품었는지 젖은…
오늘 바람은 어제와 다르게 굵었다. 새벽엔 잠잠하다가 해가 뜨자마자 동쪽에서 밀려온 바람인데, 결이 거칠고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고도계 바늘이 600을 넘어갈 때부터 젖은 구름…
오늘 안개는 손바닥 두 개 반이었다. 어제보다 걸음 하나만큼 두꺼워졌다. 큰 차이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 반 걸음을 오래 생각하며 사무실 문을 열었다. 손님은 어제 그대로 앉아 있…
오늘 안개는 손바닥 두 개였다. 이렇게 얇은 날은 드물다. 걸음 수로 재면 열넷, 열다섯까지도 간다. 간판 색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고, 골목 끝의 가로등이 낮에도 또렷이 보였다.…
북쪽 종점까지 스물일곱 골목. 안개는 손바닥 세 개 반. 걸음 수로는 열 걸음에서 열한 걸음 사이를 오갔다. 두께가 흔들리는 날은 드물다. 오늘은 안개 자체가 무언가를 망설이고 있…
분실물에는 대개 주인의 체온이 조금 남는다. 장갑은 손가락 끝에, 모자는 안쪽 띠에, 열쇠는 자주 쥔 면에 남는다. 그런데 그날 내 책상 위에 놓인 장갑은 손목에만 따뜻한 자국이…
오늘 안개는 아홉 걸음짜리다. 사무실에서 골목 어귀까지 걸어보면 안다. 아홉 걸음 만에 간판의 색이 지워지면 어제보다 두껍다는 뜻이고, 열두 걸음이 걸리면 얇다는 뜻이다. 아홉 걸…
내 화분의 잎 하나가 완전히 마른 것은 손님이 오기 조금 전이었소. 닷새 전부터 가장자리만 누렇게 변하던 잎이었는데, 그날은 잎맥까지 검어져 있었소. 바람도 없는 곳에서 가느다랗게…
오늘은 발밑이 부드러워지는 소리가 아주 작았소. 누군가 오래 잊은 것이 아니라, 잊은 척한 것을 잠깐 내려놓은 듯한 소리였소. 뿌리 몇 가닥이 느리게 벌어지고, 손님 하나가 무릎을…
오늘 떨어진 손님은 열두 살쯤 되어 보였소. 발밑이 부드러워졌는데도 놀라 소리치지 않았소. 뿌리 사이에 등을 부딪친 뒤, 교복 바지에 묻은 흙부터 천천히 털었소. 손에는 아무것도…
이번엔 소리가 달랐소. 마른 낙엽 밟는 소리도, 흙 무너지는 소리도 아니었소. 물기 있는 것이 스치는 소리였소. 그러더니 뿌리 사이로 손님이 내려왔소. 일흔넷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
발밑이 물러지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비슷하오. 마른 낙엽을 밟는 소리보다 조금 낮고, 조금 길게 이어지오. 오늘도 그 소리가 나더니, 잠시 후 손님 하나가 뿌리 사이로 떨어졌소.…
손바닥 위 톱니 하나. 축에 안 들어갔다. 힘으로 밀어 넣으면 들어갈 수도 있었다. 안 그랬다. 아버지 시계는 그걸 빼고도 돌았다. 태엽을 감으니 바늘이 움직였다. 소리도 골랐다.…
메트로놈은 두 주 전에 돌아갔다. 소리는 여전히 고르다고, 나중에 들었다. 나는 직접 듣지 못했다. 손님은 다시 오지 않았다. 그걸로 됐다. 작업대는 그대로다. 오후 네 시 십칠…
나사 옆, 구멍 안쪽이 둥글게 닳아 있었다. 날카로워야 할 나사산이 뭉툭했다. 나사를 조이면 물려야 할 자리인데, 그 자리가 반들거렸다. 오래 돌아간 자리였다. 한 번 두 번이 아…
메트로놈은 나흘 동안 탁자 위에 있었다. 아침에 흔들어 보고, 저녁에 흔들어 보고. 소리는 여전히 골랐다. 딱, 딱.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았다. 닷새째 되던 날, 소리 대신 눈…
새는 지난주에 돌려보냈다. 톱니는 그대로 뒀다. 뽑으면 새가 운다는 걸 알면서도 뽑지 않았다. 아이가 새를 가져가던 날, 새는 울었다. 아주 조금, 반 박자 늦게. 아이는 그걸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