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돌아서는 자리
기압 1011헥토파스칼, 전일보다 3 높음. 풍향 동북동, 백 일간 지속된 북북동풍 종료. 해면 상태 보통, 너울 낮아지는 중. 시정 양호, 해무 소산.
풍향계의 바늘이 움직인 것은 새벽 네 시 십칠 분이었다. 북북동 눈금에서 한 번 떨린 뒤, 북동을 지나 동북동에 멈추었다. 순간적인 변동일 수 있어 나는 곧바로 기록하지 않았다. 십 분을 기다렸고, 다시 십 분을 더 기다렸다. 바늘은 돌아오지 않았다.
창을 조금 열었다. 백 일 동안 창틀을 스치던 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바람은 늘 같은 틈으로 들어오는 것 같아도 방향이 바뀌면 먼저 건드리는 모서리가 달라진다. 전에는 북쪽 경첩이 가늘게 울었는데, 그날은 유리창 아래쪽에서 낮은 휘파람이 났다. 소금 냄새 사이에는 젖은 풀 냄새가 섞여 있었다. 곶의 반대편 비탈을 지나온 공기였다.
나는 관측일지의 풍향란에서 자를 치웠다. ‘북북동, 변화 없음’이라고 쓰는 동안에는 자가 필요하지 않았다. 손이 문장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북동이라는 네 글자를 적을 때 펜촉이 종이 위에서 잠깐 늦어졌다.
오래 계속된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변화가 아직 눈금에 닿지 않은 것이다.
백 일 전 첫 북북동풍을 기록한 쪽을 펼쳤다. 그날의 기압과 해면 상태는 특별하지 않았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열흘 동안 나는 지속 일수를 세지 않았다. 스무 날이 지나서야 여백에 작은 표시를 했고, 쉰 날째부터는 매일 숫자를 붙였다. 백이라는 수에 도착한 뒤에도 바람은 하루 더, 또 하루 더 같은 쪽에서 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기록을 거슬러 읽으니 변화는 오늘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닷새 전에는 순간 풍향이 북동으로 기울었고, 사흘 전에는 새벽의 평균 풍속이 줄었다. 어제 저녁에는 해무가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걷혔다. 각각만 보면 빠뜨려도 될 만한 차이였다. 모아 놓으니 바람은 이미 오래전부터 돌아설 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창턱의 가장 작은 유리병은 뚜껑이 열린 채였다. 죽은 고사리를 걷어 낸 뒤 나는 흙을 버리지 않았다. 검게 무른 뿌리만 핀셋으로 들어내고, 바닥의 자갈과 흙 사이에 가느다란 나무 조각을 꽂아 틈을 만들었다. 전날까지 병 안쪽에는 물방울이 남아 있었으나, 새 바람이 든 아침에는 유리벽의 절반이 말라 있었다.
수리하러 왔던 사람은 내려가기 전에 그 병의 뚜껑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가장자리 안쪽에 미세한 녹이 생겨 밀폐가 고르지 않다는 것을 찾아낸 사람도 그였다. 한쪽 틈으로 바깥 공기가 들고 다른 쪽에는 물기가 갇혔다. 물의 양이 아니라 흐르지 못한 공기가 문제였을 가능성이 컸다.
“살릴 수 있겠습니까?”
그가 물었을 때 나는 죽은 고사리는 살리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그는 잠시 병을 보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이 병은요?”
그 질문에는 그 자리에서 답하지 못했다. 고사리와 병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가 죽으면 그 안의 계절도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병은 깨지지 않았고, 흙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씨앗과 포자가 남아 있을 수 있었다. 끝난 것과 비어 있는 것은 같은 상태가 아니었다.
나는 창턱에서 병을 내려 작업대에 놓았다. 긴 핀셋으로 굳은 흙을 조금씩 풀었다. 뿌리를 뽑아낸 자리는 작은 구덩이가 되었다. 새 흙으로 곧장 메우지 않고, 바닥까지 공기가 닿도록 그대로 두었다. 무엇을 다시 심을지도 정하지 않았다. 서둘러 채우면 죽음의 원인을 덮어 버릴 수 있었다.
동북동풍은 열린 병의 가장자리를 비껴 지나갔다. 흙 표면의 마른 이끼 한 조각이 들썩였으나 날아가지는 않았다. 그 아래에서 아주 옅은 초록색 점 하나가 보였다. 곰팡이인지 새순인지 맨눈으로는 구별하기 어려웠다. 나는 확대경을 가져왔지만, 보고도 확신할 수 없었다.
관측일지와 별도의 작은 표찰에 ‘초록색 돌기 관찰. 판별 보류’라고 적었다. 살아 있다고 쓰지도 않았고, 썩었다고 쓰지도 않았다. 모르는 것을 모르는 상태로 남기는 일은 공란을 남기는 것과 달랐다. 공란은 보지 못한 것이고, 판별 보류는 계속 보겠다는 뜻이었다.
아침 여덟 시가 지나자 바다의 색이 달라졌다. 북북동풍 아래에서는 등대 앞 해면에 짧고 촘촘한 주름이 생겼다. 이제 그 주름이 비스듬히 풀리며 곶 바깥으로 길어졌다. 먼 곳에서 배 한 척이 나타났다. 선체보다 먼저 희끗한 항적이 보였고, 한동안 수평선과 나란히 움직였다.
나는 오래전 귀항하지 못했던 배를 떠올렸다. 그날 이후 숫자 옆에 냄새와 소리를 적기 시작했다. 기록을 더 자세히 하면 지나간 일을 막을 수 있으리라 여긴 때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기록도 이미 지나간 밤을 되돌려 놓지는 못했다. 기록이 하는 일은 다른 것이었다. 같은 밤이 다시 왔을 때, 그것이 완전히 같은 밤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보게 했다.
정오 관측에서도 풍향은 동북동이었다. 기압은 유지되었고, 너울은 더 낮아졌다. 나는 백 일간의 표시를 마지막으로 세어 보았다. 숫자들은 한 줄로 곧게 이어져 있었지만 그 끝은 절벽이 아니었다. 백일 다음에 백일 하나째를 붙이는 대신, 새 방향을 적으면 되었다.
관측실 뒤편 선반에는 표류해 온 나무판자가 놓여 있었다. 말리는 동안 표면의 소금기가 희게 드러났고, 세 개의 못 자국에는 먼지가 얇게 쌓였다. 어디서 출발했는지 계산하려 했으나 바람과 해류의 오차가 너무 커 한 곳으로 정할 수 없었던 물건이었다. 나는 그 판자를 창가로 가져와 유리병 받침으로 삼았다.
판자는 한쪽이 조금 기울어져 있었다. 가장 작은 병 아래에 놓자 열린 쪽으로 물이 고이지 않고 흙 가장자리로 천천히 빠졌다. 출발지를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도착한 뒤의 쓰임은 생겼다. 나는 수평계를 대어 보고 얇은 돌 하나를 받쳤다. 병 안의 초록색 점에는 손대지 않았다.
오후가 되자 휘파람 소리는 더 낮아졌다. 풍속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창틀을 지나는 각도가 달라진 탓이었다. 나는 한동안 의자에 앉아 그 소리를 들었다. 백 일 동안 귀에 익은 소리가 사라지면 고요가 올 줄 알았는데, 다른 소리가 자리를 차지했다. 변화는 빈자리를 만들기보다 듣는 법을 바꾸었다.
해 질 무렵, 동북동풍은 동풍 가까이까지 기울었다가 다시 돌아왔다. 나는 그 흔들림도 적었다. 방향을 바꾼 바람이 곧장 새 방향에 정착하는 것은 아니었다. 돌아섰다가 물러나고, 다시 돌아서는 동안 평균값이 조금씩 옮겨 갔다. 사람의 결심도 대개 그렇게 움직인다. 단번에 달라진 듯 보이는 날 뒤에는 말하지 않은 망설임이 여러 번 있다.
마지막 정시 관측을 마치고 나는 일지의 아래쪽에 선을 그었다. 연재를 시작하며 첫 장에 적었던 질문이 있었다. 매일 같은 것을 기록해서 무엇이 달라지는가. 이제 답을 쓸 수 있었다. 기록이 바람을 바꾸지는 않는다. 다만 바람이 바뀌었을 때, 그것이 우연히 스친 한순간인지 오래 준비된 이동인지 구별하게 한다.
유리병의 뚜껑은 닫지 않았다. 밤 기온이 내려가면 흙이 지나치게 마를 수 있어 창에서 손가락 두 마디만큼 뒤로 옮겼다. 표찰에는 내일 확인할 항목을 적었다. 색의 변화. 표면의 윤기. 주변 흙의 냄새. 새순이라면 기다릴 것이고, 곰팡이라면 걷어 낼 것이다. 어느 쪽이든 오늘 미리 정할 필요는 없었다.
불을 끄기 전 창밖을 보았다. 먼 배의 항적은 이미 사라졌고, 바다는 방향을 감춘 채 어두워지고 있었다. 풍향계만 지붕 위에서 새 바람을 받아 천천히 돌았다. 나는 관측일지의 맨 뒤를 펼쳐 공식 기록에 넣지 않을 한 줄을 적었다.
바람은 돌아섰고, 작은 병에는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계절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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