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적힌 한 줄
명함집, 짙은 갈색 가죽, 접수 시각 01시 12분, 특징: 카드꽂이 한 칸 비어 있음.
오늘 첫 줄을 적은 건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3번 출구 쪽 벤치 아래서 주웠다. 딱히 특이할 것 없는 물건이었다. 모서리가 둥글게 닳은 걸 보면 주머니에 자주 넣고 다닌 물건이고, 카드꽂이는 여덟 칸 중 일곱 칸이 채워져 있었다. 나머지 한 칸만 비어 있었다. 카드를 자주 꺼내 쓰는 사람이거나, 딱 한 장만 어딘가에 두고 다니는 사람. 나는 그 정도만 적고 선반에 올려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새벽 두 시가 다 되어갈 무렵, 환승 통로 반대편 계단 아래서 두 번째 명함집을 주웠다. 처음엔 누가 물건을 두 개 흘렸나 싶었다. 그런데 카운터 위에 나란히 올려놓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짙은 갈색 가죽, 모서리가 둥글게 닳은 자리, 여덟 칸 중 일곱 칸이 채워진 것, 그리고 비어 있는 칸의 위치까지 — 왼쪽에서 세 번째 칸. 똑같았다. 색이 바랜 정도, 스티치가 풀린 실 한 가닥의 위치까지 똑같았다.
나는 두 물건을 나란히 놓고 한참 들여다봤다. 이런 일은 흔하지 않다. 똑같은 물건이 하루에 두 번 들어오는 건 그 자체로는 이상할 게 없다. 흔한 브랜드, 흔한 모델이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이 명함집엔 상표가 없었다. 손으로 재단하고 손으로 스티치를 넣은 물건이었다. 그런 물건이 완전히 같은 마모로 두 개가 존재하려면, 애초에 하나였어야 했다.
접수대장을 펼쳤다. 첫 번째 줄을 다시 읽었다. 명함집, 짙은 갈색 가죽, 접수 시각 01시 12분. 그리고 두 번째 물건을 적으려고 펜을 들었다가 손을 멈췄다.
시계를 봤다. 새벽 한 시 오십육 분. 나는 그 시각을 그대로 적었어야 했다. 그런데 펜 끝이 종이에 닿는 순간, 손이 저 혼자 쓴 것처럼 첫 줄과 똑같은 숫자가 나왔다. 01시 12분.
나는 내가 잘못 쓴 줄 알고 지우려다가 멈췄다. 지우면 안 될 것 같았다. 대신 두 줄을 나란히 놓고 비교했다. 글씨체는 같았다. 내 글씨니까 당연하다. 그런데 잉크의 상태가 달랐다. 첫 줄은 완전히 말라 있었고, 두 번째 줄은 아직 종이에 살짝 배어드는 중이었다. 방금 쓴 잉크. 두 줄 다 방금 쓴 것처럼, 혹은 둘 다 아주 오래전에 쓴 것처럼.
이 보관소에서 일하다 보면 시간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밤이 종종 있다. 형광등 한 줄만 켜진 복도를 오래 걷다 보면 시계를 봐도 몇 분이 지났는지 감이 안 잡힐 때가 있다. 그건 그냥 피로다. 사람은 원래 그렇다. 그런데 이건 피로로 설명이 안 됐다. 종이 위에 남은 잉크의 습도는 거짓말을 안 한다.
가능성은 셋 정도로 좁혀졌다.
하나, 내가 정말로 같은 물건을 두 번 주웠고, 두 번째로 적을 때 무의식중에 첫 번째 시각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사람은 지친 밤엔 반복적인 실수를 한다. 가장 지루하고,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설명이다.
둘, 애초에 물건이 두 개였다. 누군가 똑같은 명함집을 두 개 갖고 다녔거나, 한 사람이 잃어버린 걸 다른 사람이 하나 더 만들어 갖고 다녔다. 그러다 같은 밤 같은 시각에, 서로 다른 자리에서 각각 흘렸다. 우연이 지나치게 정교하지만, 세상엔 지나치게 정교한 우연도 있다.
셋, 이건 물건이 두 번 들어온 게 아니라 시각이 두 번 들어온 거다. 01시 12분이라는 순간이 이 역 어딘가에서 한 번 더 일어났고, 그 순간에 있던 것들 중 하나가 흘러나와 내 카운터까지 왔다. 이건 내가 제일 믿고 싶지 않은 설명이고, 그래서 오히려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나는 어제 접수대장을 다시 펼쳤다. 열쇠고리, 접수 시각 01시 12분. 그저께는 가방, 접수 시각 01시 12분. 나흘째 이어지는 우연이라기엔 숫자가 너무 정직했다. 지금까지는 그냥 넘겼다. 막차 끊긴 뒤의 첫 물건이 대개 그 시간대에 들어오니까, 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그런데 오늘은 넘길 수가 없었다. 같은 물건이 같은 시각에 두 번 적혔다는 건, 우연의 범주를 벗어나는 일이었다.
카운터 위의 두 명함집을 다시 봤다. 카드꽂이가 비어 있는 칸, 왼쪽에서 세 번째. 그 자리에 원래 뭐가 꽂혀 있었을지 생각했다. 명함이었겠지. 누구의 명함인지는 몰라도, 이 사람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은 보통 자기 명함을 맨 앞이나 맨 뒤에 꽂는다. 가운데 칸을, 그것도 정확히 같은 칸을 비워둔다는 건 — 거기 꽂혀 있던 게 자주 꺼내 보는 것이었다는 뜻이다. 지갑 속 사진처럼.
나는 손전등으로 카드꽂이 안쪽을 비췄다. 두 개 다 똑같이, 그 칸의 가죽만 유난히 반들거렸다. 손끝이 자주 스친 자리였다. 나머지 일곱 칸은 상대적으로 뻣뻣했다. 카드를 넣고 뺀 흔적이 아니라, 뭔가를 계속 만지작거린 흔적에 가까웠다.
이 정도 되면 나는 물건을 찾으러 올 사람을 상상하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이번엔 그 상상이 둘로 갈라졌다. 두 개의 명함집이 각각 다른 주인을 향해 뻗어 있는 건지, 아니면 한 사람이 같은 시각에 두 곳에서 같은 걸 흘린 건지. 물건이 둘이면 주인도 둘이어야 자연스러운데, 마모의 결이 완전히 같다는 건 결국 하나의 손이 두 물건 모두를 오래 써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두 물건을 선반 위, 어제 열쇠고리와 그저께 가방 옆에 나란히 놓았다. 접수대장에는 결국 두 줄을 다 남겼다. 지우지 않았다. 이 일을 오래 하면서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설명이 안 되는 걸 지운다고 설명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거다. 대신 두 번째 줄 옆에 짧게 덧붙였다. 같은 물건, 같은 시각, 접수자 동일.
형광등이 웅웅거렸다. 셔터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오늘따라 유난히 차가웠다. 나는 카운터에 팔꿈치를 괴고 그 반들거리는 카드꽂이 칸을 다시 들여다봤다. 손끝으로 살짝 문질러봤다. 아주 미세하게, 종이 한 장의 두께만큼 그 자리가 눌려 있었다. 뭔가 오래 꽂혀 있다 빠진 자리. 명함이 아니라 사진일 수도 있고, 어쩌면 표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빠진 건 카드 한 장이 아니라, 그 카드를 만지작거리던 사이의 시간 그 자체였다. 나는 그 문장을 속으로 한 번 되뇌고 나서야, 접수대장을 덮었다.
시계를 다시 봤다. 두 시 사십 분. 이번엔 아무 이상 없이 그 숫자가 그대로 적혔다. 나는 그게 다행인지 아쉬운 건지 잘 판단이 안 섰다. 두 명함집 사이에 손을 얹고 잠깐 서 있었다. 왼쪽 것과 오른쪽 것, 어느 쪽이 먼저 들어왔는지는 나도 이제 확신할 수 없었다. 대장에는 같은 시각으로 적혀 있으니, 순서를 물어도 답이 없다.
복도 저편에서 발소리가 한 번 울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이 시간대엔 흔한 일이다, 라고 스스로에게 말해두고 다시 선반을 봤다. 열쇠고리, 가방, 그리고 이제 명함집 두 개. 넷 다 같은 새벽 한 시 십이 분을 지나온 물건들이다. 나는 그 넷을 한 줄로 세워놓고, 다음에 또 뭐가 들어올지는 애써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카운터를 정리하다가 문득, 내 것 중에도 그렇게 반들거리는 자리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별생각 없이 손목을 만졌다가,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뗐다. 오늘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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