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는 항로
오늘 바람은 북쪽에서 세 번 끊겨 불었다. 한 줄기 지나가고 나면 하늘이 숨을 참은 듯 고요해졌다가, 갑자기 더 차가운 바람이 구름 밑을 파고들었다. 고도계 바늘은 920에서 떨었고, 그보다 높이 오르자 귀가 먹먹해져 내 숨소리까지 멀게 들렸다. 젖은 구름에서는 오래 닫아 둔 서랍 냄새가 났다. 이런 날은 돌아오는 길을 먼저 정해야 한다. 나는 알고 있었다. 알고도 출발부터 서둘렀다.
우체소장은 남색 편지를 두 손으로 들고 있었다. 첫 번째 봉인 편지보다 더 짙은 색이었다. 빛을 받으면 검게 보일 정도였고, 봉투 가장자리에는 여러 번 접었다 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수신인 칸에는 이름 대신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남아 있던 사람.”
내가 읽자 소장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봉인된 편지에 글자가 있는 것도 드문데, 그게 이름이 아닌 경우는 더 드물었다.
“어디에 남았다는 건데?”
“그걸 알았으면 네 배낭에 안 넣었지.”
맞는 말이었다. 나는 편지를 가슴끈 안쪽에 끼우고 날개를 펼쳤다. 손끝은 아직 멀쩡했다. 봉인은 희미하게 차가웠고, 바람주머니는 북쪽을 가리키다 축 늘어졌다.
첫 번째 구름다리를 건너자 바람이 끊겼다. 날개가 힘없이 접히며 몸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나는 난간을 걷어차 겨우 상승풍 끝을 잡았다. 고도계 바늘이 700까지 미끄러졌다가 다시 올라왔다. 판단을 늦출 틈은 없었다.
“좋아. 북쪽이 아니면 북서쪽.”
나는 혼잣말하며 항로를 꺾었다. 빠른 판단은 대개 나를 살렸다. 문제는 ‘대개’가 ‘언제나’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네 번째 섬의 풍차 지붕을 스칠 때 손끝이 저렸다. 강한 신호였다. 편지는 가슴끈 안에서 심장 하나를 더 단 것처럼 두근거렸다. 나는 풍차 뒤편의 좁은 구름길로 내려갔다. 그 길 끝에는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작은 섬이 떠 있었다.
섬은 떠난 뒤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밭에는 작물이 없었고, 우물 두레박은 바닥까지 내려간 채 움직이지 않았다. 집마다 문이 열려 있었지만 먼지조차 새로 쌓인 흔적이 없었다. 누군가 짐을 챙겨 떠난 게 아니라, 섬 전체가 오래전부터 기다림만 남겨 둔 것 같았다.
가장 안쪽 집 앞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얼굴은 모자 그늘에 가려졌고, 품에는 밧줄 한 묶음이 안겨 있었다. 내 손끝의 저림이 팔꿈치까지 번졌다.
“우편이야.”
그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편지를 내밀었다. 봉인은 잠깐 붉게 달아올랐다가 곧 식었다. 풀리지 않았다.
“당신이 남아 있던 사람이 아니야?”
“오늘 아침까진 그랬지.”
그 사람은 밧줄을 내려놓고 섬 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작은 활공정 한 척이 매여 있었다. 돛은 이미 펼쳐져 있었고, 짐도 다 실려 있었다.
“이제 떠날 거야. 마지막 밧줄만 풀면 돼.”
나는 편지를 다시 내밀었다. 더 가까이 가져가면 봉인이 마음을 바꿀 것처럼. 하지만 차가운 봉랍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뒤에서 바람이 터졌다. 세 번 끊겨 불던 북풍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활공정의 돛이 부풀었고, 섬을 붙잡던 구름닻 하나가 큰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잠깐만. 혹시 다른 사람이 있었어? 여기 끝까지 남겠다고 한 사람.”
“있었어.”
“어디로 갔는데?”
그 사람은 대답 대신 하늘 아래를 보았다. 섬 밑으로 구름층이 두껍게 깔려 있었다. 그 아래에는 항로가 없었다. 고도계 바늘이 갑자기 흔들리며 500, 450, 400을 찍었다. 섬 전체가 가라앉고 있었다.
나는 틀렸다는 걸 그제야 인정했다. 이 편지는 지금 떠나는 사람에게 가는 게 아니었다. 이 섬에 마지막까지 있었던 누군가에게 가는 편지였고, 나는 너무 늦게 도착했다.
“그 사람이 떠난 방향만 알려 줘.”
“방향은 없어. 아래로 내려갔으니까.”
활공정의 밧줄이 팽팽해졌다. 그 사람은 마지막 매듭을 풀었다. 나는 붙잡지 않았다. 남는 것과 붙들리는 것은 다르니까. 활공정은 북풍을 받아 솟구쳤고, 빈 섬은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구름 속에 잠겼다.
나는 섬 지붕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구름층 아래로 내려가 보려 했지만 고도계가 300에서 경고음을 냈다. 날개 천에는 물기가 얼어붙기 시작했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이 조여 왔다. 그래도 조금만 더 가면 신호가 다시 올 것 같았다.
오지 않았다.
바람주머니가 거꾸로 뒤집혔다. 상승풍이 끊기며 몸이 옆으로 돌아갔다. 나는 구름 속에서 섬의 밑바닥을 한 번 보았다. 검은 뿌리 같은 바위 사이로 작은 등불 하나가 흔들렸다. 사람인지, 반사된 봉인의 빛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다음 순간 날개 한쪽이 접혔다.
나는 돌아섰다. 멋있게가 아니라, 겁에 질려서. 배낭끈을 잡아당기고 비상 날개를 펼친 뒤 가장 가까운 상승풍에 몸을 던졌다. 구름을 뚫고 나왔을 때 코피가 입술까지 흘러 있었다. 손안의 편지는 젖지 않았고, 봉인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우체소로 돌아온 건 해가 기울 무렵이었다. 소장은 내 얼굴보다 편지를 먼저 봤다. 그게 서운하지는 않았다. 오늘은 나도 같은 순서로 확인했을 테니까.
“실패했어.”
말하고 나니 이상하게 목이 가벼워졌다. 변명은 뒤따라오지 않았다. 바람이 끊겼다거나, 섬이 가라앉았다거나, 신호가 늦었다는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그래도 내가 제때 도착하지 못했다는 사실보다 앞에 설 수는 없었다.
소장은 반송함을 열었다. 보통 배달하지 못한 우편은 그 안에 사흘을 둔다. 발신인의 방향이 나타나면 되돌려 보내고, 아무 반응이 없으면 미배달 보관실로 옮긴다. 그러나 남색 편지를 함에 넣는 순간, 안쪽의 종이들이 모조리 바닥으로 쏟아졌다. 반송함이 편지를 밀어낸 것이다.
“보관실로 가져갈까?”
“거기도 받아 주지 않을 거야.”
소장의 대답은 빨랐다. 나는 괜히 봉투 뒷면을 문질렀다. 그때 손끝에 얕은 홈이 걸렸다. 봉랍 아래, 종이와 같은 남색 실로 꿰맨 작은 주머니가 있었다. 배달하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었다.
주머니 안에는 접힌 항로표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지도라기엔 선이 엉성했고, 기록이라기엔 빈칸이 많았다. 네 번째 섬에서 가라앉은 작은 섬까지의 길만 선명했다. 그리고 그 아래, 내가 구름 속에서 돌아선 지점부터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선이 이어져 있었다.
선 끝에는 짧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여기서 기다렸음.”
그 글씨의 마지막 획은 위로 급하게 튀어 있었다. 나는 그 모양을 알고 있었다. 내 항로표에서 방향을 잘못 짚었을 때, 서둘러 고쳐 그리는 화살표와 똑같았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손버릇까지 닮아 있었다.
나는 편지를 반송함에 다시 넣지 않았다. 배달 자루에도 넣지 않았다. 대신 우체소 벽에 걸린 실패 우편 장부를 펼쳐 날짜와 고도, 바람의 방향을 적었다. 수신인 칸에는 봉투에 쓰인 그대로 옮겼다. 남아 있던 사람. 처리란에는 한참 펜을 대고 있다가 이렇게 썼다. 배달 종료가 아니라 항로 중지.
그 편지가 옮긴 것은 소식이 아니라, 돌아서 버린 자리의 정확한 좌표였다.
소장은 아무 말 없이 작은 철제 보관통을 내주었다. 나는 편지를 넣고 자물쇠를 채운 뒤 열쇠를 목에 걸었다. 실패한 편지는 버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성공한 척 보관하지도 않는다. 다시 출발할 조건이 생길 때까지, 실패한 사람 곁에 둔다.
밤이 되자 바람은 완전히 멎었다. 나는 우체소 처마에 앉아 항로표를 다시 펼쳤다. 구름 아래로 내려가는 선 옆에는 아주 희미한 표시가 두 개 더 있었다. 같은 지점으로 향하는 날짜 없는 선들. 하나는 오래전에 그어진 듯 바랬고, 다른 하나는 아직 잉크 냄새가 났다.
철제 보관통 안에서 봉인이 한 번, 작게 울렸다. 편지가 아니라 문을 두드리는 소리 같았다. 나는 열지 않았다. 아직 받을 사람 앞이 아니었으니까. 다만 다음 날 쓸 빈 항로표의 첫 칸에, 한 번도 적어 본 적 없는 고도를 써 두었다.
구름 아래, 300 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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