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지는 오르골
나사 옆, 구멍 안쪽이 둥글게 닳아 있었다.
날카로워야 할 나사산이 뭉툭했다. 나사를 조이면 물려야 할 자리인데, 그 자리가 반들거렸다. 오래 돌아간 자리였다. 한 번 두 번이 아니라, 셀 수 없이 여러 번.
나쁜 뜻으로 헐거워진 게 아니었다. 그냥 오래 쓴 거였다. 조였다 풀었다, 조였다 풀었다. 그러다 보면 물리는 자리가 둥글어진다. 나사는 둥근 구멍에서는 힘을 못 쓴다. 아무리 세게 조여도 곧 다시 스르르 풀린다.

조이는 걸로는 안 잡힌다. 파인 자리는 채워야 다시 문다.
작업대 서랍에서 아주 가는 놋쇠관을 하나 꺼냈다. 나사보다 조금 크고 나사 구멍보다 조금 작은 크기로 잘랐다. 그걸 구멍에 끼우고, 나사를 다시 넣었다. 이번엔 물렸다. 손끝으로 흔들어 봐도 안 움직였다.
벽시계 옆에 메트로놈을 뒀다. 바늘을 육십에 맞추고 십 분을 뒀다. 일 분마다 셌다. 예순, 예순, 예순. 한 번도 안 틀렸다.
사흘 뒤 손님이 왔다. 나는 상자를 내밀었다.
"고쳤니껴."
"어떻게요?"
"나사가 헐거웠드래요."
그게 다였다. 손님은 더 묻지 않았다. 상자를 흔들어 소리를 들어보더니,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아이들이 이제 곡 끝에서 안 넘어지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모른다고 했다. 넘어지는 거야 아이들 손이 하는 일이지, 상자가 하는 일은 아니라고.
손님은 웃었다. 나는 안 웃었다. 원래 잘 안 웃는다.
메트로놈을 보내고 이틀이 지났다. 이번 손님은 낯설었다. 학교에서 급식을 담당한다고 했다. 자기소개는 그게 다였다.
탁자 위에 나무 상자 하나를 올렸다. 손바닥 두 개만 한 크기였다. 뚜껑에 작은 새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옆에 태엽 감는 손잡이가 붙어 있었다. 오르골이었다.
"감을수록 느려져요."
이상한 말이었다. 태엽은 많이 감을수록 힘이 세다. 힘이 세면 대개 더 빨리, 더 오래 돈다. 느려질 이유가 없었다.
"얼마나 감으면 그러니껴."
"조금 감으면 괜찮아요. 근데 끝까지 감으면… 처음부터 느려요. 시작부터요."
나는 손잡이를 두 바퀴만 돌려 봤다. 곡이 흘러나왔다. 익숙한 박자였다. 다시 손잡이를 끝까지 돌렸다. 태엽 저항이 손끝에 묵직하게 걸렸다. 뚜껑을 열었다. 곡이 나왔다. 느렸다. 늘어지듯 느렸다. 처음 한 마디부터.
이상했다. 태엽을 많이 감았으면 스프링은 더 팽팽해야 한다. 팽팽한 스프링이 더 천천히 풀리는 경우는 없다. 있다면, 풀리는 걸 억지로 막는 뭔가가 있다는 뜻이다.
뚜껑 안쪽을 봤다. 실린더가 있고, 그 위에 아주 가는 빗살 같은 쇠가 나란히 박혀 있었다. 소리를 내는 부분이다. 그 옆에 작은 날개바퀴가 하나 더 있었다. 속도를 조절하는 부품이다. 날개바퀴는 태엽이 세게 풀릴수록 더 빨리 돌아 저항을 만든다. 그래야 곡이 일정하게 나온다. 원래는 그렇다.
날개바퀴를 만져 봤다. 뻑뻑했다. 세게 감을수록 뻑뻑함이 커지는 것 같았다. 손끝으로는 확실치 않았다. 눈으로 봐도 모르겠다.
"언제부터 이랬니껴."
손님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얼마 안 됐어요. 근데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원래 그런 줄 알았어요, 처음엔."
원래 그런 줄 알았다는 말. 그 말을 들으면 나는 더 안 물어본다. 원래 그런 줄 알았다는 건, 어느 순간부터 달라졌는데 그 순간을 못 봤다는 뜻이다. 못 본 순간은 캐물어도 안 나온다. 기다려야 나온다.
상자를 탁자 위에 뒀다. 손님을 보냈다. 저녁에 손잡이를 두 바퀴 감고 들어 봤다. 정상. 아침에 손잡이를 끝까지 감고 들어 봤다. 느렸다.
날개바퀴 옆에 아주 작은 얼룩이 있었다. 기름 자국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돋보기 하나로는 안 보였다. 돋보기 두 개를 겹쳤다.
거기, 실 같은 게 한 가닥 감겨 있었다.
회중시계는 오후 네 시 십칠 분에 그대로 있었다. 까치는 몸통만 있었다. 오늘은 그 옆에 오르골을 뒀다. 나사 서랍을 닫았다. 놋쇠관 자르던 톱을 닦아 걸었다.
내일은 실을 볼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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