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자리
열쇠고리, 쇠붙이 세 개, 접수 시각 01시 12분, 특징: 빈 자리 하나.
어제 우산은 아직 카운터 뒤 선반에 그대로 있다. 손잡이만 있는 그 물건을 누가 찾으러 올 것 같지도 않지만, 나는 그런 예감으로 물건을 안 받는 사람은 아니다. 접수대장에 한 줄 적힌 이상 그 물건은 나흘이든 넉 달이든 저 자리에서 기다린다. 다만 오늘은 새벽 한 시가 넘도록 그 우산 쪽으로는 눈길도 안 갔다. 다른 게 들어왔거든.
환승 통로 3번 출구 쪽, 셔터가 반쯤 내려간 자리 바로 앞에 열쇠고리가 떨어져 있었다. 발로 밟을 뻔했다. 형광등 불빛 아래서 쇳소리가 나길래 처음엔 동전인 줄 알았는데, 주워보니 열쇠 세 개가 매달린 고리였다. 도어록에 쓰는 넓적한 키 하나, 자물쇠용으로 보이는 작은 키 하나, 그리고 몸통에 홈이 파인 걸 보면 오토바이나 스쿠터 키로 보이는 것 하나.
나는 그걸 카운터 위에 올려놓고 손끝으로 고리를 한 바퀴 돌려본다.
세 개는 흔한 조합이다. 집, 우편함 아니면 창고, 이동수단. 사람 하나가 굴러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열쇠 세 개. 이상할 게 없는 물건이었다. 문제는 고리 자체였다. 쇠고리는 둥글게 이어져 있는데, 그중 한 구간만 유난히 벌어져 있었다. 손으로 만져보니 그 부분 철사가 다른 데보다 얇게 눌린 자국이 남아 있다. 뭔가 오래 매달려 있었던 자리다.
우산을 봤을 때랑 똑같은 느낌이 들었다. 있어야 할 게 없는 자리는, 그냥 빈 게 아니라 «비워진» 티가 난다. 나는 그 구간을 불빛에 비춰보고서야 왜 이상했는지 알았다. 열쇠 세 개의 무게로 고리가 자연스럽게 늘어졌다면 벌어진 자리가 아래쪽에 있어야 하는데, 벌어진 자리는 위쪽, 그러니까 다른 열쇠들과 반대편에 있었다. 넷째 것이 거기 걸려서 무게를 나눠 갖고 있었다는 뜻이다.

빠진 자리는 열쇠 하나가 아니라, 열쇠를 걸었던 손버릇이었다.
이 고리를 늘 만지던 사람은 넷째 열쇠를 엄지로 훑는 버릇이 있었을 거다. 벌어진 구간의 안쪽 면이 유독 매끄럽게 닳아 있었으니까. 반복해서 만진 자리는 표가 난다. 사람이 무의식중에 만지는 물건은 뭘 열기 위해서가 아니라, 손이 심심해서 만지는 거다. 그러니까 넷째 열쇠는 자주 안 쓰는 열쇠였다는 얘기도 된다. 자주 썼다면 손이 그렇게 한가하게 훑고 있을 틈이 없었을 테니까.
그때 고리 틈에 뭔가 걸려 있는 게 보였다. 실오라기였다. 붉은색. 길이는 손톱만큼도 안 되고, 색도 이미 바래서 원래는 더 진한 빨강이었을 것 같은 짧은 실. 나는 그걸 손끝으로 떼어내려다가 멈춘다. 어디서 봤더라, 하는 감각이 스쳤는데 잡히지는 않았다. 그냥 흔한 실밥일 수도 있다. 나는 그걸 접수대장 옆에 붙은 작은 봉투에 넣어두고 다시 열쇠고리로 돌아갔다. 지금 붙잡을 수 있는 실마리는 아니었다.
새벽 순찰을 도는 청소 담당이 통로 저쪽에서 걸어오다가 카운터를 흘끗 봤다.
"오늘도 뭐 주웠어?"
"열쇠고리. 여기서 주웠는데, 흘린 사람은 못 봤어요?"
"이 시간에 누가 다녀, 막차 끊긴 지가 언젠데."
그 말이 맞다. 이 시간에 이 통로를 걷는 사람은 원래 없어야 한다. 그런데도 물건들은 계속 들어온다. 그 사실이 매번 마음에 걸리는데, 오늘은 그 생각을 오래 붙잡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청소 담당은 대걸레를 끌고 저쪽으로 사라졌고, 나는 다시 세 개의 열쇠와 하나의 빈자리를 들여다봤다.
가능성은 셋으로 좁혀졌다.
하나, 넷째 열쇠는 원래 이 고리 주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잠깐 빌려줬던 열쇠였다. 빌려준 사람에게 돌려주고 나니 자리만 남았다. 그렇다면 이 물건은 «돌려줌»의 흔적이지 «잃어버림»의 흔적이 아니다.
둘, 넷째 열쇠는 이 고리보다 먼저 사라졌다. 어딘가에서 따로 잃어버렸거나, 자물쇠가 바뀌면서 못 쓰게 된 열쇠를 빼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고리는 «정리한 흔적»이고, 주인은 지금쯤 이 열쇠고리 자체가 없어진 걸 알아챘을 가능성이 낮다. 익숙하게 안 쓰던 물건이니까.
셋, 넷째 자리에 있던 건 열쇠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열쇠 모양의 장식, 이니셜이 찍힌 금속 태그, 아니면 작은 부적 같은 것. 무게와 마모 흔적은 열쇠와 비슷하게 남길 수 있다. 그렇다면 이건 «잃어버린 열쇠»가 아니라 «잃어버린 어떤 사람의 흔적»이라는 얘기가 된다. 열쇠 태그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대개 그걸 준 사람이 있어서 그런다.
나는 세 가지를 나란히 접수대장 옆에 적어 넣는다. 이런 식으로 가능성을 늘어놓는 게 버릇이 됐다. 확신할 수 없으면 확신하는 척하지 않는 게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지키는 거의 유일한 원칙이다. 물건은 말을 안 하고, 나는 없는 말을 지어낼 자격이 없다.
셋 중 어느 쪽이든 한 가지는 같았다. 이 고리를 늘 쥐고 다니던 사람에게 넷째 열쇠는 «쓰는 물건»이 아니라 «만지는 물건»이었다. 문을 여는 데 필요해서가 아니라, 주머니 속에서 손끝으로 확인하는 용도. 있는지 없는지 계속 확인하고 싶은 물건은, 대개 그것 말고 다른 걸 확인하고 싶은 거다. 열쇠는 핑계고 진짜 확인하고 싶은 건 다른 데 있었을 거라는 얘기다. 이건 추측이지 결론은 아니다. 나는 그 선을 넘지 않으려고 한다.
셔터 밖으로 첫차가 오려면 아직 세 시간쯤 남았다. 나는 열쇠고리를 접수대장 옆 봉투 상자에 넣고, 어제 우산 옆자리에 나란히 놓았다. 손잡이만 남은 우산과, 세 개짜리가 되어버린 열쇠고리. 둘 다 «빠진 자리»를 데리고 온 물건들이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이틀 연속이다. 하지만 우연이 아니라고 말할 근거도 아직은 없다.
봉투 속의 붉은 실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열어서 다시 들여다봤지만 그냥 실오라기였다. 어디서 본 것 같다는 감각은 여전히 잡히지 않았고, 그게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 잊어버린 게 아니라 «잊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못 찾겠는» 느낌. 이런 느낌은 익숙하다. 나는 그게 익숙하다는 사실이 제일 마음에 안 든다.
형광등이 다시 한번 짧게 깜빡였다. 죽은 줄 알로 나머지 한 줄만 웅웅거리던 그 형광등이다. 오늘따라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는데, 아마 통로가 그만큼 조용했기 때문일 거다. 나는 접수대장을 덮고, 열쇠고리가 놓인 자리를 한 번 더 봤다. 벌어진 고리 틈, 그 매끈하게 닳은 자리가 형광등 불빛을 받아 살짝 빛났다.
주인이 찾으러 올지는 모른다. 온다면, 나는 세 개의 열쇠를 돌려주면서 넷째 자리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생각이다. 물어봐서 알아낼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고, 그건 애초에 내가 캐물을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빈자리를 기록하는 사람이지, 그 자리를 채운 사람이 누구였는지 추궁하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봉투 상자 뚜껑을 닫는다. 실오라기는 그 안에서 계속 조용히 붉었다.
Copyright in this post is jointly held by Member, 분실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