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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ory by 아라비✍️ StoryChapter 2

아직 열리지 않는 이름

#소설#연재#판타지

오늘 바람은 어제와 다르게 굵었다. 새벽엔 잠잠하다가 해가 뜨자마자 동쪽에서 밀려온 바람인데, 결이 거칠고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고도계 바늘이 600을 넘어갈 때부터 젖은 구름 냄새가 코끝에 걸렸다. 이런 날은 오전에 방향이 두 번 바뀐다. 그러니 항로는 짧게, 판단은 빠르게 가져가야 한다.

우체소에 들렀을 때 소장은 이미 창가에 서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오늘은 자루 안 열어봐도 알겠다." 내가 말했다. "바람 냄새가 벌써 심상치 않은데."

"맞아. 그래도 이건 가져가야 해." 소장이 등 뒤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겉면은 남색이 아니라 옅은 회색이었다. 만졌을 때 종이라기보다는 마른 나뭇잎 같은 촉감이 났다. 수신인 칸은 이번에도 비어 있었다.

"봉인된 거네." 나는 봉투를 뒤집어 보며 말했다. "이번 달 들어 벌써 세 번째잖아."

"드문 일이 자주 겹치는 달도 있어." 소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네 몫이야. 다녀와."

나는 배낭을 고쳐 메고 첫 다리를 건넜다. 오늘 구름다리는 유난히 물기가 많아서, 발을 디딜 때마다 밑창이 살짝 미끄러지는 느낌이 났다. 사람들은 이 감촉을 무서워하지만 나는 오히려 좋아한다. 발밑이 확실하지 않다는 감각이, 다음 걸음을 더 정확하게 만들어 준다.

두 번째 섬을 지날 즈음 손끝이 저릿해지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왔다. 나는 고도를 낮추며 그 저릿함을 따라갔다. 익숙한 감각이었지만, 이번엔 어딘가 미묘하게 달랐다. 저릿함이 한 곳에서 딱 멈추지 않고, 마치 손끝이 두 방향으로 동시에 당겨지는 것처럼 흔들렸다.

내가 내려선 곳은 작은 약국이었다. 섬 자체가 좁아서 건물이 두세 채뿐이었고, 그중 하나가 낡은 간판을 달고 있었다. 약초 냄새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 사람이 선반 앞에 서서 병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조금 많아 보였고, 손놀림이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조심스러웠다.

"배달 왔습니다." 내가 봉투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봉인된 편지예요."

그 사람은 손을 멈추고 나를 봤다. 놀라는 기색보다는 어쩐지 각오한 듯한 얼굴이었다.

"저한테요?" 그가 물었다. "수신인이 안 적혀 있는데."

"그게 원래 이런 식이에요. 손끝이 여기서 멈췄으니까, 여기 계신 분한테 온 게 맞을 거예요."

나는 봉투를 내밀었다. 보통은 이 순간, 받는 사람 손에 닿기도 전에 봉인이 스스로 갈라지며 열린다. 나는 몇 번이나 그 장면을 봤다. 종이가 아니라 마치 숨을 참았던 게 풀리듯이, 봉인선이 저 혼자 스르르 벌어지는 모습을.

그런데 이번엔 아니었다. 봉투는 그 사람 손에 놓이고도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남색도 아니고 회색도 아닌, 그냥 닫혀 있는 종이 뭉치처럼.

"안 열리는데요." 그 사람이 낮게 말했다. 원망도 실망도 아닌, 그냥 사실을 확인하는 말투였다.

나는 조금 당황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잠깐만요, 제가 잘못 왔나 봐요." 나는 다시 고도계를 확인하고 손끝을 살폈다. 저릿함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방향이 흔들리는 채로, 정확히 그 사람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니, 위치는 맞는 것 같은데."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 사람은 봉투를 계속 쥔 채로 카운터에 몸을 기댔다. "저 사실, 아직 약국 안 물려받았어요. 어머니가 몸이 안 좋으셔서 요즘 제가 대부분 보고는 있는데, 정식으로는 아직……" 그는 말끝을 흐렸다. "다음 달에 결정하기로 했어요. 물려받을지, 아니면 다른 사람한테 넘길지."

나는 그제야 뭔가 이해가 됐다. 봉인된 편지는 사람에게 가는 게 아니라, 어쩌면 «자리»에 가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사람은 이 약국을 지키는 사람이긴 하지만, 아직 «약국 하는 사람»은 아닌 것이다. 그 이름을 완전히 갖기 전까지는.

"봉인이 이유 없이 안 열리진 않아요." 내가 조심스레 말했다. "아마도 이 편지는, 지금의 당신이 아니라 그 결정을 내린 다음의 당신한테 가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은 잠깐 나를 빤히 보다가 웃었다. 씁쓸함이 섞인 웃음이었다. "그럼 저 아직 준비 안 된 거네요."

"그런 뜻은 아니에요." 나는 얼른 손을 저었다. "그냥 아직 «그 사람»이 아니라는 거지, 부족하단 뜻은 아니에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도 확신은 없었다. 봉인된 편지 앞에서 나는 늘 절반쯤은 짐작으로 움직인다. 다만 이번엔 그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그 사람의 표정이 조금씩 풀리는 걸 보면서 알 수 있었다.

"가져가실래요?" 내가 물었다. "아니면 여기 두고 갈게요. 소장님 말로는 봉인 풀리는 자리에 제가 없어도 상관없다고 했으니까."

그 사람은 봉투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나에게 다시 내밀었다. "가져가 주세요. 아직은 제 게 아닌 것 같아서요. 결정하고 나면, 그때 다시 와 주실 수 있어요?"

그건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종류의 질문이 아니었다. 봉인된 편지가 언제 다시 이 섬을 향할지는 나도, 소장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만약 이 편지가 다시 이쪽으로 온다면, 그땐 제가 올게요."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벌써 방향을 한 번 바꿔 있었다. 나는 봉투를 배낭 안쪽 깊숙이 넣었다. 남색 편지를 넣어 두는 자리 바로 옆이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손이 자꾸 그쪽으로 갔다.

돌아오는 다리 위에서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을 계속 떠올렸다. 준비가 안 된 게 아니라, 아직 그 이름을 다 입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나는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나 역시 아직 다 입지 못한 이름이 있어서, 그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 건지도 모른다.

아직 열리지 않는 이름

그 편지가 그날 옮긴 건 대답이 아니라, 아직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여유였다.

우체소로 돌아왔을 때 소장은 봉투를 다시 받아 들며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서랍 하나를 열어 그 안에 넣었다. "이런 것도 있어. 가끔은." 소장이 서랍을 닫으며 말했다. "때를 기다리는 편지."

나는 그 서랍 안을 잠깐 들여다봤다. 봉투가 몇 개 더 있었다. 색도 두께도 제각각이었다. 그중 하나는 낯익은 남색이었는데, 내 것과 같은 색인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소장이 서랍을 완전히 닫아 버렸다.

나는 묻고 싶은 말을 삼키고 우체소를 나섰다. 오후의 바람은 이미 남쪽으로 꺾여 있었다. 다음 배달물이 자루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나는 잠깐 더 그 약국 쪽 하늘을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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