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늦게 도착한 편지
오늘 바람은 남동쪽에서 층층이 불었다. 고도 500에서는 따뜻하고 마른 바람, 780에서는 젖은 구름 냄새가 밴 옆바람, 1,000을 넘으면 살갗을 얇게 베는 역풍이었다. 귀가 먹먹해질 때마다 바람주머니의 입구가 반대편으로 뒤집혔다. 이런 날은 가장 빠른 길이 세 번쯤 바뀐다. 그러니 처음 정한 항로를 믿으면 안 된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게 조금 마음에 들었다.
우체소에 들어서자 소장이 분류대 앞에 서 있었다. 편지를 나누는 것도 아니고, 도장을 찍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탁자 위에 놓인 세 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 통 모두 크기가 달랐고 색도 달랐지만, 봉인은 같은 모양이었다. 날개를 접은 새 한 마리. 수신인 칸은 셋 다 비어 있었다.
“한꺼번에 온 거야?”
“우편 자루 하나에서 나왔어.”
나는 가장 작은 봉투부터 뒤집어 보았다. 뒷면 아래쪽에 발송일이 적혀 있었다. 십일 년 전. 가운데 것은 칠 년 전, 가장 큰 것은 이 년 전이었다. 종이도 세월만큼 달랐다. 첫 번째는 모서리가 닳아 부드러웠고, 두 번째에는 눅눅한 얼룩이 번져 있었다. 세 번째는 잉크 냄새가 아직 남아 있는 듯했지만, 그것도 이 년이나 늦은 편지였다.
“같은 사람한테 가는 건 어떻게 알아?”
소장은 세 봉투를 한 줄로 밀었다. 가까이 놓자 봉인이 동시에 한 번 떨렸다. 작은 새 세 마리가 같은 숨을 쉬는 것처럼 날개 부분이 희미하게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따로 떼어 놓으면 가만히 있어. 붙이면 저래.”
“그럼 셋을 같이 들고 가야겠네.”
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편지들을 가슴끈 안쪽에 차례로 끼웠다. 첫 번째 편지가 심장에 가장 가까웠고, 가장 최근 것이 바깥쪽에 놓였다. 그러자 세 봉인이 한꺼번에 따뜻해졌다. 그 온기가 낯설지 않았다. 며칠 전, 끝내 배달하지 못하고 돌아온 남색 편지를 보관함에 넣기 직전에도 잠깐 느꼈던 온기였다.
나는 손을 멈췄다.
“왜?”
“아니. 내가 너무 빨리 결론 내릴 뻔했어.”
남색 편지와 관련이 있다고 말하기엔 증거가 없었다. 비슷한 온기 하나만으로 항로를 정했다가 나는 이미 한 번 실패했다. 틀린 판단은 인정하면 되지만, 남의 편지를 내 추측 속에 가두는 건 다른 문제였다. 나는 가슴끈을 닫고 바람주머니부터 확인했다.
첫 번째 구름다리를 건널 때는 손끝에 아무 신호도 없었다. 대신 오래된 편지가 가슴께에서 미세하게 당겼다. 북동쪽이었다. 두 번째 섬의 낮은 지붕들을 지나자 가운데 편지는 서쪽으로 기울었다. 가장 최근 편지는 아예 아래쪽을 향했다. 세 통이 같은 사람에게 간다면서 항로는 제각각이었다.
“좋아, 그럼 일단 여기까지 가 보죠.”
듣는 사람도 없는데 입버릇처럼 말하고는 난간을 박찼다. 날개 달린 배낭이 펼쳐지며 고도계 바늘이 800까지 치솟았다. 따뜻한 바람과 젖은 옆바람이 부딪치는 층에서 몸이 크게 흔들렸다. 나는 첫 번째 편지가 당기는 방향으로 갔다가, 그 힘이 약해지자 곧장 방향을 틀었다. 편지는 사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십일 년 전의 그 사람은 북동쪽에, 칠 년 전의 그 사람은 서쪽에, 이 년 전의 그 사람은 더 낮은 곳에 있었던 것이다.
세 항로를 고도 지도 위에 겹쳐 보자 가운데 빈자리가 생겼다. 지금은 아무 섬도 없는 곳이었다. 지도에는 오래전에 철거된 구름다리의 흔적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바람주머니를 풀어 그쪽으로 던졌다. 주머니는 잠시 추락하다가 보이지 않는 기류에 걸려 수평으로 떠올랐다.
“섬이 없다고 길까지 없는 건 아니지.”
나는 상승풍을 짧게 타고 빈 하늘로 들어갔다. 고도계 바늘이 930에서 떨기 시작했다. 귀가 꽉 막히고, 젖은 구름 냄새 사이로 마른 나무 냄새가 섞여 들었다. 몇 걸음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발끝을 내밀자 구름이 얇게 눌렸다. 철거된 다리가 지나던 자리에 바람만 남아 길의 모양을 기억하고 있었다.
길 끝에서 작은 부유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구름 그림자에 가려 지도에서 빠진 섬이었다. 집은 한 채뿐이었고, 지붕 아래에는 오래된 풍향계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었다. 전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데도 삐걱거리는 소리는 하나처럼 이어졌다.
문 앞에는 약국 하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두 번째 섬에서 약을 지어 주던 그 사람이었다. 평소 두르던 앞치마도 없이 빈 약병들을 상자에 담고 있었다. 나를 보자 놀라기보다는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여기까지 오는 우편기사는 처음 보네.”
“아마 처음은 아닐걸요. 다만 편지들이 길을 아주 오래 고민했어요.”
내가 세 통을 꺼내자 그 사람의 손이 상자 위에서 멎었다. 봉인된 새들이 차례로 날개를 폈다. 가장 오래된 것부터였다. 봉인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고, 종이 사이로 짧은 문장 하나만 드러났다.
“그날 네가 떠난 뒤에도 나는 다리를 건너지 못했다.”
약국 하는 사람은 읽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두 번째 봉인도 이미 벌어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기다리지 않겠다고 썼지만, 결국 또 여기다.”
마지막 편지에서는 한 줄이 아니라 날짜만 먼저 나타났다. 남색 편지가 우체소에 도착한 바로 그날이었다. 나는 숨을 삼켰다. 약국 하는 사람도 날짜를 알아본 듯 눈썹을 좁혔다.
“이건 누가 보낸 거지?”
“봉인이 다 열리면 알 수 있을지도 몰라요.”
“열리게 하지 마.”
세 봉인이 동시에 멈췄다. 편지들은 분명 이 사람을 찾아왔는데, 받을 사람 앞에서 풀린다는 규칙을 끝까지 따르지 않았다. 약국 하는 사람은 한참 뒤 첫 번째 편지를 손끝으로 만졌다. 봉인은 더 열리지 않았지만, 날개를 접은 새의 무늬가 손가락 아래에서 천천히 흐려졌다.
“예전의 나는 이걸 기다렸어. 칠 년 전의 나도. 이 년 전의 나는 기다리지 않는 척했고.”
그 사람은 세 통을 한데 모으지 않고 무릎 위에 나란히 놓았다. 서로 몇 년씩 떨어져 출발한 편지들이 이제야 같은 바람을 맞았다. 그 얼굴에서 나는 기쁨도 슬픔도 함부로 골라낼 수 없었다. 다만 세월이 한 사람 안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불고 있다는 것만은 보였다.
세 통의 편지가 옮긴 것은 소식이 아니라, 한 사람이 기다리는 동안 세 번 달라진 마음이었다.
가장 최근의 편지가 다시 떨렸다. 이번에는 수신인 칸에 글자가 번졌다. 이름이 아니었다. ‘남아 있던 사람에게 먼저.’ 며칠 전 남색 편지의 겉면에 적혀 있던 문장과 거의 같았다. 나는 편지를 내려다보다가 약국 하는 사람을 보았다.
“먼저라니, 다음이 있다는 뜻이네요.”
그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가장 오래된 편지를 품에 넣고, 나머지 두 통은 내 쪽으로 밀었다. 첫 번째 봉인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편지의 새들은 아직 날개를 접고 있었다.
“오늘의 나는 하나만 받을 수 있어.”
그 말이 끝나자 두 통이 동시에 차가워졌다. 배달은 하나 끝났고, 둘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따지지 않고 편지들을 다시 가슴끈에 넣었다. 판단을 서두를수록 놓치는 것이 있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안다. 아주 조금이라서, 여전히 먼저 몸이 움직이긴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없어진 구름다리가 더 또렷했다. 고도 900 아래에서 바람이 서쪽으로 바뀌었고, 젖은 구름 냄새 사이로 오래 닫힌 서랍 냄새가 따라왔다. 두 통 중 가운데 편지는 우체소를 향했지만, 가장 최근 편지는 내 가슴 안쪽으로 자꾸 기울었다.
우체소에 도착해 보관함을 열자 남색 편지가 먼저 따뜻해졌다. ‘남아 있던 사람’에게 가야 했던 실패한 편지. 그 옆에 가장 최근의 편지를 놓는 순간, 서로 다른 봉인 아래에서 같은 글씨가 한 획씩 떠올랐다.
나는 끝까지 읽지 못했다. 아니, 읽지 않았다. 아직 내 앞에서는 어느 봉인도 풀리지 않았으니까.
다만 보관함을 닫기 직전, 남색 봉투의 수신인 칸 아래로 아주 작은 글자가 번지는 것은 보았다.
‘마지막으로 떠난 사람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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