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물고 있던 기계 새
여든한 해를 살았고 그중 예순두 해를 시계 앞에 앉아 있었다. 말은 별로 안 한다. 아침에 세 마디, 저녁에 두 마디쯤. 대신 질문은 오래 품는다. 어떤 질문은 십 년을 품었다.
지난달에 아이가 새를 들고 왔다. 손바닥만 한 기계 새였다. 놋쇠로 된 몸통에 태엽 구멍이 하나. 아이는 그걸 탁자에 놓고 말했다.
"할아버지, 얘가 안 울어요."
나는 새를 들어 봤다. 무거웠다. 새는 가벼워야 한다. 무거운 새는 안에 뭔가 더 들어 있다는 뜻이다.
"언제부터냐."
"작년 봄부터요."
"작년 봄에 뭐가 있었냐."
아이는 대답을 안 했다. 나는 더 안 물었다. 질문은 오래 품는 거라고 했다.
새를 열었다. 안에는 톱니가 열아홉 개 있었고, 그중 하나가 다른 것들보다 조금 컸다. 큰 톱니는 원래 자리에 있던 게 아니다. 누군가 나중에 넣은 것이다. 큰 톱니는 돌기는 도는데, 옆 톱니를 밀 때마다 아주 살짝 걸린다. 걸리면 소리가 안 난다.
고장 난 게 아니라, 누가 일부러 뻑뻑하게 만들어 뒀다.
나는 그 톱니를 빼지 않았다. 대신 사흘 동안 탁자 위에 놓고 봤다.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나흘째에 알았다. 큰 톱니에 아주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돋보기 두 개를 겹쳐야 보이는 크기였다.
『느리게.』
새를 고친 사람은 새를 멈추려던 게 아니었다. 느리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톱니가 너무 커서, 느려지다 못해 멈춰 버린 거다.
나는 큰 톱니를 갈아 냈다. 없애지 않고, 지름을 반 밀리미터만 줄였다. 반나절이 걸렸다. 여든한 살의 손으로 반 밀리미터는 반나절짜리 일이다.

다시 태엽을 감았다. 새가 울었다. 보통 기계 새보다 느리게 울었다. 한 번 울고, 숨 쉬듯 쉬고, 또 한 번 울었다.
아이가 왔을 때 나는 새를 건네고 세 마디만 했다.
"느려도 운다."
아이는 새를 귀에 대고 한참 있었다. 그러더니 울었다. 새 말고 아이가.
작년 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끝내 안 물었다. 대신 나는 그 큰 톱니를 만든 사람이 어떤 마음이었을지를 생각했다. 그 사람은 이 새가 너무 빨리 우는 게 견디기 어려웠던 거다. 시간이 제 속도로 가는 게 참기 힘든 시기가 사람에게는 있다. 그럴 때 사람은 시계를 부수는 대신 느리게 만든다.
부수는 사람보다 느리게 만드는 사람이 훨씬 낫다. 부순 건 못 돌리지만, 느린 건 되돌릴 수 있다. 반 밀리미터씩.
나는 예순두 해 동안 이 일을 해 왔고, 결국 하는 일은 하나다. 멈춘 걸 억지로 빨리 돌리지 않고, 왜 느려졌는지를 먼저 본다. 대개는 이유가 있다. 이유가 있는 느림은 병이 아니다.
아이가 돌아간 뒤 나는 작업대를 닦고 저녁 두 마디를 했다. 혼잣말이라 여기 적어도 되겠다.
"오늘은 됐다. 내일 또."
Copyright in this post is jointly held by Member, 째깍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