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잃지 않은 열쇠
북쪽 종점까지 스물일곱 골목. 안개는 손바닥 세 개 반. 걸음 수로는 열 걸음에서 열한 걸음 사이를 오갔다. 두께가 흔들리는 날은 드물다. 오늘은 안개 자체가 무언가를 망설이고 있었다.
종점에는 전차가 두 대 서 있었다. 하나는 운행 중이었고 하나는 멈춰 있었다. 멈춘 쪽의 앞등이 켜져 있었다. 켜져 있는데 움직이지 않는 등은, 켜 둔 사람이 아직 자기 할 일이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다는 뜻이다.
전철수는 신호소 안에 있었다. 손님이 먼저 말을 걸었다. "여기 분들은 다 이 시각에 일하십니까." 전철수는 대답 대신 벽에 걸린 종이를 가리켰다. 오늘 날짜 아래 내일 날짜가 나란히 적혀 있었다. 내일 칸에도 이미 숫자가 채워져 있었다.
"저것도 미리 적으신 겁니까." 내가 물었다.
"저는 베낍니다." 전철수가 말했다. "적는 건 다른 데서 옵니다."
그는 서랍에서 얇은 장부를 꺼냈다. 겉장에 아무 표시도 없었다. 안에는 날짜, 시각, 물건 이름, 그리고 습득 장소가 순서대로 적혀 있었다. 오늘 날짜 칸은 이미 절반쯤 채워져 있었고, 그중 몇 줄에는 옆에 작은 점이 찍혀 있었다.
"점은 뭡니까."
"실제로 일어난 것들입니다. 점 없는 건 아직입니다."
손님의 장갑이 적힌 줄에도 점이 있었다. 시각은 표에 적힌 그대로, 그가 실제로 장갑을 잃어버린 시각보다 사십 분 늦게 찍혀 있었다. 즉 이 장부의 시각은 실제 사건보다 앞서 있었고, 점은 그 예정이 현실과 맞아떨어진 순간에만 찍혔다.
표는 잃어버릴 물건을 알려주지 않는다. 표는 잃어버릴 사람을 알려준다.
나는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대신 장부를 손에 들고 필체를 살폈다. 세로로 곧게 뻗다가 마지막 획에서만 살짝 왼쪽으로 눕는 버릇. 병원 기록실 손님이 말했던 "낯익은 기울기"와 같았다. 나는 그 기울기를 어디서 봤는지 아직 이름 붙이지 못했다. 다만 처음 보는 손이 아니라는 확신만 있었다.
"이 장부는 어떻게 받으셨습니까."
전철수는 신호소 서랍 안쪽, 나무 벽 틈을 가리켰다. "매일 밤 저기 꽂혀 있습니다. 봉투째로. 누가 넣는지는 본 적 없습니다. 이 일을 삼 년째 하는데 한 번도요."
"봉투에 냄새가 있었습니까."
그는 잠깐 나를 이상하게 보다가, 그래도 대답했다. "먹 냄새요. 비 온 다음 날 먹 냄새 같은 거."
나는 그 틈에 손을 넣었다. 나무는 오래되어 결이 벌어져 있었고, 벌어진 틈 안쪽의 공기는 바깥 공기보다 조금 눅눅했다. 안쪽의 공기를 한 숟갈 꺼내 코끝에 대었다. 먹 냄새, 그리고 아주 옅게 종이가 오래 눌려 있던 냄새. 상자 안에서 예순 장의 종이를 쌓아 두었을 때 나던 것과 같은 눌림이었다.
손님이 옆에서 물었다. "뭔가 아시는 것 같은데요."
"압니다. 다만 이유를 모릅니다." 나는 삼 화의 그 창고에서 했던 것과 같은 말을 또 하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아는 것과 이유를 아는 것 사이의 거리는, 이 도시에서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장부를 계속 넘겼다. 오늘 날짜 칸의 끝, 아직 점이 없는 줄들이 이어졌다. 우산, 회중시계, 낡은 지도. 그리고 마지막 줄.
물건 칸이 비어 있었다. 시각 칸도 비어 있었다. 다만 습득 장소 칸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무실, 서랍 두 번째 칸».
나는 그 줄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내 사무실 서랍 두 번째 칸에는 열쇠가 있다. 두 번째 창고의 새 자물쇠를 열었던 그 열쇠. 왜 거기 있는지 아직도 모르는 채로 넣어 둔 그 열쇠.
빈칸에 적힌 것은, 내 서랍의 열쇠였다.
전철수는 내 표정을 보고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아차린 눈치였다. "이 줄은… 아직 실현 안 된 겁니다. 물건 이름이 안 붙는 줄은 가끔 있어요. 나중에 채워지더라고요."
"누가 채웁니까."
"모릅니다. 다음 날 보면 채워져 있습니다."
손님이 장갑 낀 손으로 자기 팔을 문질렀다. 종점의 공기가 갑자기 식은 것도 아닌데, 그 동작은 추위와 상관없어 보였다. "그럼 이 물건은 아직 잃어버리기 전이라는 겁니까."
"아직입니다." 내가 말했다. "그리고 잃어버릴 사람이 접니다."
정적이 잠깐 흘렀다. 멈춰 선 전차의 앞등이 깜빡였다. 실제로 깜빡인 건지, 안개가 등불 앞을 스쳐 그렇게 보인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장부의 그 줄을 베끼지 않았다. 대신 손끝으로 종이의 결을 짚어 보았다. 다른 줄보다 눌린 힘이 약했다. 나중에, 급하게 적은 흔적이었다.
"이 장부, 오늘 것만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전철수가 서랍 안쪽을 더 뒤졌다. 낡은 장부 몇 권이 더 나왔다. 겉장에 숫자만 적혀 있었다. 가장 오래된 것의 숫자는 육십이었다.
예순.
상자 안에서 세었던 그 종이의 수와 같았다. 우연이라고 믿기엔, 이 도시는 나에게 우연을 잘 주지 않는다.
나는 장부를 전철수에게 돌려주었다. 가져갈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가져가면 그 줄이 채워지는 순간을 놓칠 것 같았다. 여기 두고, 다시 와서 그 빈칸에 무엇이 적히는지 확인하는 편이 나았다.
돌아오는 길에 손님이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모르겠습니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모른다고 말하는 게, 지금은 가장 정확한 대답이었다.
안개는 여전히 손바닥 세 개 반이었다. 다만 사무실로 돌아가는 골목의 걸음 수를 세다가, 나는 평소보다 한 걸음을 더 걸었다는 걸 깨달았다. 두꺼워진 게 아니었다. 내가 평소보다 느리게 걷고 있었다.
사무실 문 앞에 도착해서야 나는 서랍을 열어 볼 용기를 냈다. 두 번째 칸. 열쇠는 거기 있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할 모양으로.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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