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일째, 같은 바람
기압 1013헥토파스칼. 풍향 북북동, 변화 없음. 해면 상태 잔잔, 백파 없음. 시정 양호.
이렇게 적고 나서 나는 펜을 내려놓는다. 어제도 이 문장이었다. 그제도 이 문장이었다. 관측일지를 뒤로 넘겨 보면 언제부터 같은 문장이 이어지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 백 일 전부터다. 나는 숫자를 믿는 사람이라 이런 것을 세는 데 게으르지 않다.
곶 끝에 등대가 있고 그 안에 관측실이 있다. 창 세 개짜리 작은 방인데, 하나는 바다를 보고 하나는 하늘을 보고 나머지 하나는 오는 길을 본다. 오는 길을 보는 창으로는 지난 백 일간 아무도 오지 않았다. 배는 가끔 지나간다. 멀리서, 마치 이 곶에는 볼일이 없다는 듯이.
기압계는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본다. 유리관 속 수은이 오늘도 똑같은 눈금에 걸려 있는 걸 보면서, 나는 이 바람이 게으른 게 아니라 끈질긴 거라고 생각한다. 바람에게 방향이 있다는 걸 잊고 사는 사람이 많다. 매일 같은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사실 매일 다른 공기를 실어 나르면서도 겉으로는 변한 게 없어 보인다. 나는 그 안쪽의 다름을 재는 사람이다.
풍향계 바늘이 북북동을 가리키고 있는 걸 확인하려고 창턱에 손을 짚었다가, 유리병 하나가 살짝 흔들리는 걸 느꼈다. 안에 든 이끼 정원이 조용히 출렁였다. 나는 손을 떼고 병을 바로 세웠다.
유리병을 하나씩 손끝으로 툭 건드려 자리를 바로잡는다
이 유리병들은 창턱을 따라 여섯 개가 놓여 있다. 이끼, 작은 고사리, 손톱만 한 조약돌, 어느 해엔가 표류물 사이에서 주운 유목 조각. 뚜껑을 닫아 두면 그 안에서 물이 스스로 돌고 돈다. 증발하고, 유리벽에 맺히고, 다시 떨어진다. 몇 달을 그렇게 둬도 죽지 않는다. 오히려 손을 대지 않을수록 잘 산다. 나는 이 사실을 좋아한다. 관측이라는 일과 정확히 반대되는 방식으로 살아 있는 것들이라서.
바람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 백 일이면 계절 하나를 통째로 넘어갈 시간이다. 그런데 이 바람만은 계절을 모르는 척한다. 나는 이걸 이상 현상이라고 적지는 않았다. 이상하다고 적는 순간 그건 사고가 되고, 사고는 보고서를 요구하고, 보고서는 누군가 와서 확인하기를 요구한다. 아직은 그럴 단계가 아니다. 그저 오래 지속되는 정상.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정오가 되기 전에 해면 온도를 재러 계단을 내려갔다. 등대 밑동, 바위에 부딪는 물의 온도를 재는 지점이 있다. 온도계 줄을 물속에 담그고 삼 분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늘 하던 대로 물빛을 본다. 오늘의 물빛은 어제와 같았다. 이런 날은 기록할 게 마땅치 않아서 냄새를 대신 적는다. 짠 내에 섞인 옅은 쇠 냄새. 이건 계측 항목이 아니지만 나는 여기에도 숫자만큼의 무게를 둔다.
온도계를 걷어 올려 눈금을 확인하고, 수첩에 옮겨 적는다
젊었을 때는 이런 하루가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턴가는 지루함과 안전함을 구별하는 법을 배웠다. 안전한 하루는 대체로 지루하게 보인다. 사건이 없는 게 사건이다, 라는 문장을 처음 관측일지에 적었을 때 나는 그게 변명처럼 느껴져서 지웠다. 지금은 지우지 않는다. 사실이니까.

백 일 동안 같은 방향으로 부는 바람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기록이다 — 변화가 없다는 것도 관측되어야 할 데이터다.
오후 늦게, 등대 위층 렌즈실을 점검하러 올라갔다. 이 등대는 배가 드물게 지나가는 만큼 불빛도 드물게 필요하지만, 그 드묾을 위해서 매일 렌즈를 닦는다. 유리를 닦다 보면 오래된 습관 하나가 같이 따라온다 — 바다 쪽을 조금 더 오래 보는 것. 오늘도 수평선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배 한 척 없이 평평했다.
그 밤에 대해서는 자세히 적지 않는다. 몇 해 전, 해무가 짙어 배 한 척이 항구로 들어오지 못한 밤이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관측일지에 숫자만 적지 않게 됐다. 냄새, 소리, 물빛, 그리고 바람이 등을 떠미는 느낌 같은 것까지.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하지만 전부를 말하지도 않는다는 걸 그때 알았다.
저녁을 먹고 다시 관측실로 올라왔을 때, 풍향계는 여전히 북북동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 잠깐 서서 손등으로 바람을 받아 보았다. 백 일째 같은 바람이지만 오늘 바람은 어제보다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 서늘했다. 온도계로는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이런 건 어디에도 적을 데가 없어서, 나는 잠시 그냥 서 있었다.
손등을 바람 쪽으로 내밀고 잠시 눈을 감는다
이런 것도 백 일쯤 모아 보면 방향이 보일까. 나는 그렇게 믿는 사람이라서, 오늘도 별다른 결론 없이 관측일지를 덮는다. 내일도 같은 시각에 같은 창을 볼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한 하루였다.
불을 끄기 전에 유리병들을 한 번 더 살폈다. 여섯 개 중 다섯 개는 지난주와 다를 게 없었다. 나머지 하나, 창가에서 볕을 가장 많이 받는 자리에 둔 병 속의 이끼가 유난히 짙어 보였다. 짙어진다는 건 살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너무 자란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그 병을 살짝 그늘 쪽으로 옮겨 두고서야 계단을 내려왔다.
관측실 문을 잠그기 전, 마지막으로 풍향계를 한 번 더 확인했다. 북북동. 백 일째. 나는 그 옆에 작은 글씨로 한 줄을 더 적었다 — 오늘은 어제보다 손끝이 서늘했다, 라고. 공식 기록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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