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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ory by 해무계✍️ StoryChapter 3

눈금이 멈춘 날

#소설#연재#잔잔한

기압 계측 불가. 풍향 계측 불가. 해면 온도 계측 불가. 공용 기록장치 작동 정지. 관측값 공란 처리.

관측일지에 공란을 남기는 데에는 숫자를 적는 것보다 더 긴 시간이 걸렸다. 펜촉을 첫 번째 칸에 대고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숫자가 없는 칸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기록하지 못했다는 사실로 가득 차 있었다.

새벽 교대 점검 때부터 이상했다. 기압계의 지침은 어젯밤 눈금에 붙은 채 움직이지 않았고, 풍향계의 바늘은 북북동과 북동 사이에서 가늘게 떨기만 했다. 해면 온도계의 표시창에는 숫자 대신 희미한 선 하나가 누워 있었다. 세 장비가 한꺼번에 말을 잃는 일은 드물었다.

나는 외함을 열었다. 안쪽 단자에 소금기가 하얗게 올라와 있었다. 밤새 창틀 틈으로 스민 습기가 전선 피복을 타고 기록장치까지 내려간 모양이었다. 타는 냄새는 없었다. 대신 젖은 동전 같은 냄새가 났다. 접점을 닦고 전원을 다시 넣었으나 지침은 돌아오지 않았다.

드라이버를 내려놓고 손가락 끝에 묻은 흰 가루를 천천히 털어 낸다

고장은 원인을 안다고 바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피로도 그렇고, 오래된 벽의 균열도 그렇다.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아낸 뒤에도 한동안은 그 상태로 지내야 한다.

나는 수리 요청서를 작성해 송신기에 걸었다. 회선은 간헐적으로 끊겼다. 같은 문장을 세 번 보낸 끝에 접수 표시가 들어왔다. 부품과 사람은 날씨가 허락하는 날 올라올 터였다. 언제라는 답은 없었다.

관측 시각이 되자 나는 습관대로 창 앞에 섰다. 바다는 잔잔해 보였다. 그러나 잔잔하다는 말도 기준이 있어야 기록이 된다. 파고를 재지 않았고 주기도 세지 않았다. 유리창 너머의 인상만으로 해면 상태를 정할 수는 없었다.

밖으로 나가 손등에 닿는 바람을 느껴 보았다. 바람은 여전히 차고, 소금 냄새는 어제보다 짙었다. 귀로 들으면 파도는 일정한 간격으로 바위 아래를 쓸었다. 갈매기 두 마리가 등대의 동쪽 면을 돌아 북쪽으로 사라졌다. 이 모든 것은 관측할 수 있었지만 계측할 수는 없었다.

눈금이 멈춘 날

재지 못한 하루에도 날씨는 빠짐없이 지나간다.

관측실로 돌아온 나는 장비마다 ‘사용 중지’ 표지를 걸었다. 평소 같으면 수치를 옮겨 적고 검산할 시간이었다. 검산할 숫자가 없으니 방이 갑자기 넓어졌다. 벽시계의 초침 소리까지 장비 하나가 더 생긴 듯 크게 들렸다.

나는 창턱의 유리병을 닦기 시작했다. 병 표면에는 보이지 않을 만큼 얇은 염분 막이 앉아 있었다. 마른 천으로 한 번 닦고, 젖은 천으로 다시 닦은 뒤, 햇빛이 드는 순서대로 자리를 바꾸었다. 이끼가 많은 병은 뒤로, 어린 고사리가 든 병은 앞으로 옮겼다.

마지막 병을 들었을 때 창틀 아래에 세워 둔 나무판자가 눈에 들어왔다. 전날 해변에서 가져온 표류물이었다. 나는 판자의 크기와 무게, 따개비의 붙은 방향, 가장자리의 마모 상태를 적어 두었다. 바람과 해류를 대입해 출발 가능 범위도 그려 놓았으나, 범위는 넓었고 결론은 없었다.

그 판자를 책상 위에 눕혀 다시 살폈다. 장비가 멈추니 다른 것의 작은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 세 개의 못 자국 가운데 가장 깊은 구멍에서 어제는 보지 못한 녹색 점이 나와 있었다.

처음에는 벗겨진 페인트 조각인 줄 알았다. 확대경을 가져와 들여다보니 얇은 껍질이 갈라져 있었고, 그 틈에서 흰 뿌리 같은 것이 나무결을 붙잡고 있었다. 씨앗이었다. 바닷물에 젖고 햇볕에 마른 판자 속에서, 관측실의 습기를 받아 싹을 틔운 모양이었다.

나는 핀셋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억지로 빼면 뿌리가 끊어질 만큼 작았다. 그대로 두자니 판자는 다시 마를 것이었다. 잠시 생각한 뒤, 못 자국 둘레에 젖은 이끼를 아주 조금 얹었다. 물은 한 방울만 떨어뜨렸다. 작은 것에는 대개 한 방울이면 충분하고, 넘치는 친절은 침수와 다르지 않다.

싹의 모양만으로 어디에서 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떡잎도 펴지지 않았고 줄기에는 구별할 만한 색이 없었다. 다만 씨앗이 못 자국 안쪽에 깊이 박혀 있었다는 점은 적을 만했다. 판자가 바다에 뜬 뒤 우연히 들어간 것이 아니라, 판자가 제 자리에 붙어 있던 때부터 틈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전날 그린 표류 경로 위에서 바깥쪽 원 하나를 지웠다. 먼 바다에서 오래 떠돌았다는 가정보다, 식물이 자라는 육지 가까이에서 떨어져 나왔을 가능성이 조금 높아졌다. 결론은 아니었다. 가능성 하나의 무게가 달라졌을 뿐이다.

공란뿐이던 관측일지의 여백에 나는 별도 사항을 적었다. ‘표류 목재 못 자국 내부에서 발아 확인. 종 미상. 채취 보류.’ 기압도 풍향도 아니었지만, 오늘 내가 확인한 것 가운데 가장 정확한 문장이었다.

오후에는 구름이 낮아졌다. 높이를 잴 수 없어 수치로 남기지 않았다. 창밖의 빛이 한 겹씩 얇아지는 것만 보았다. 유리병 속 고사리 잎도 빛을 따라 천천히 접혔다. 싹은 움직이지 않는 듯했으나 확대경으로 보면 오전보다 껍질이 조금 더 벌어져 있었다.

저녁 무렵 송신기에서 짧은 회신이 왔다. 예비 부품을 든 사람이 내일 오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날씨에 따라 도착이 늦어질 수 있고, 수리에는 사흘가량 걸릴지도 모른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오는 길을 보는 창의 유리를 닦았다. 길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해무가 곶 아래부터 차오르기 시작해 돌계단의 아랫부분을 먼저 지웠다. 내일 누군가 올라온다면 마지막 굽이를 돌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불을 낮추기 전에 나무판자를 창턱 끝에 놓았다. 유리병들 사이에는 맞지 않는 물건이었지만, 젖은 이끼 곁이라 습도를 오래 붙잡을 수 있었다. 판자의 세 못 자국 중 하나에서만 아주 작은 초록이 올라와 있었다.

관측일지의 빈 칸은 끝내 채우지 않았다. 대신 맨 아래에 장비 정지 시각과 점검 순서를 적고 자를 대어 선을 그었다. 선은 하루를 닫았고, 숫자가 없는 기록을 기록으로 남겼다.

밤이 되자 멈춘 풍향계 바늘이 창밖에서 간헐적으로 금속음을 냈다. 바람 때문인지 축의 뒤틀림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소리의 간격을 세지 않았다. 책상 위에서는 젖은 나무 냄새와 이끼 냄새가 섞여 났다.

문을 잠그기 전, 오는 길 쪽 창을 한 번 더 보았다. 해무 속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돌계단 아래 어딘가에서, 바람과는 박자가 다른 작은 마찰음이 한 번 들렸다. 나는 듣고도 일지에는 적지 않았다. 내일 확인할 것이 하나 생겼다고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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