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TDAM
Top UpLog in
A story by 해무계✍️ StoryChapter 5

병 안의 계절

#소설#연재#잔잔한

기압 1008헥토파스칼. 풍향 북북동, 변화 없음. 해면 상태 약간 거침, 백파 간헐적. 시정 불량, 해무 지속.

그날 등대에 온 것은 죽음이었다. 창턱의 가장 작은 유리병 안에서, 손톱만 한 고사리 한 포기가 잎을 모두 접고 있었다.

수리하러 온 사람은 사흘째 아침에 장비 외함을 닫았다. 기압계와 해면 온도계는 전날부터 정상 범위로 돌아왔고, 마지막까지 불규칙하던 풍향계의 신호도 새벽 점검에서는 끊기지 않았다. 그는 공구를 천 위에 늘어놓고 하나씩 닦은 뒤 가방에 넣었다. 작은 나사 한 개도 남지 않았다.

나는 복구된 수치를 관측일지에 옮겨 적다가 유리병을 보았다. 처음에는 밤사이 잎이 오므라든 줄 알았다. 고사리는 빛이 약하거나 기온이 낮을 때 제 몸을 작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병을 들어 창 쪽으로 기울이자 줄기 밑동이 검게 물러 있었다. 흙에서는 젖은 나무껍질 냄새 아래로 희미한 신 냄새가 올라왔다.

“이 병 말입니다.”

그가 가방의 덮개를 닫다 말고 다가왔다. 첫날 물을 얼마나 자주 주느냐고 물었던 바로 그 병이었다. 유리벽에는 물방울이 지나치게 촘촘히 맺혀 있었다. 몇 방울은 벽을 타고 내려가 흙 가장자리에 얕은 고랑을 만들었다.

“물을 많이 준 겁니까?”

“아닙니다. 적게 주지도 않았습니다.”

대답하고 나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관측값이 정상 범위라고 해서 장비가 멀쩡한 것은 아니듯, 물의 양이 적당했다고 해서 병 안의 조건까지 적당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마개를 열고 핀셋으로 고사리의 밑동을 눌러 보았다. 힘을 받지 못한 줄기가 흙 쪽으로 조용히 기울었다.

장비가 멈춘 날, 나는 측정하지 못한 것들을 손으로 확인했다. 창을 열어 바람을 가늠했고, 난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의 간격을 셌다. 그날 해무가 관측실 안쪽까지 밀려들었다. 수리를 위해 외함을 열어 둔 동안 창턱의 병들을 반대편으로 옮겨 놓았고, 가장 작은 병은 기록장치 곁에 두었다.

그 자리는 따뜻했다. 작동하지 않는 장치였지만 내부 전원부에는 잔열이 남아 있었다. 그 위로 젖은 공기가 오래 머물렀다. 나는 병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으면서도 벽면의 물방울을 닦지 않았다. 습기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병 안에서는 빠져나갈 데가 없었겠군요.”

그가 말했다. 그는 고장 난 단자에서 소금기를 긁어내던 때처럼 몸을 낮추어 병 안을 보았다. 나는 마개 안쪽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물이 얇은 막처럼 묻어났다.

“그렇습니다. 들어온 것은 적었는데, 나간 것이 더 적었습니다.”

고사리 옆의 이끼는 아직 푸르렀다. 유리벽 가까이 난 작은 싹 두 개도 서 있었다. 병 하나가 전부 죽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가운데를 차지하던 고사리가 접히자 정원은 갑자기 넓어 보였다. 빈자리는 실제 크기보다 커지는 법이 있었다.

나는 병을 살릴 때 죽은 부분을 오래 두지 않는다. 무른 줄기에서 곰팡이가 번지면 남은 이끼까지 상한다. 핀셋을 밑동 깊이 넣고 뿌리를 들어 올렸다. 가는 뿌리 끝에는 검은 흙이 엉겨 붙어 있었고, 건강한 뿌리에서 나야 할 풀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는 버릴 그릇을 찾는 듯 둘러보았다. 나는 서랍에서 흰 종이 한 장을 꺼내 고사리를 그 위에 놓았다. 말라 죽은 잎은 바스러지지만, 물러 죽은 잎은 모양을 오래 유지한다. 살아 있을 때의 윤곽을 붙든 채 색부터 어두워진다.

“새것을 심으실 겁니까?”

“오늘은 아닙니다.”

나는 작은 숟가락으로 뿌리가 있던 자리를 파냈다. 젖은 흙을 덜어 낼 때마다 아래층에서 더 짙은 냄새가 올라왔다. 바닥의 자갈 사이에는 물이 고여 있었다. 겉에서 보이지 않던 양이었다. 병을 비스듬히 들자 맑지 않은 물 한 줄기가 가장자리로 모였다.

살아 있는 것을 지키는 일은 더해 주는 것보다 빠져나갈 길을 남기는 데 가까웠다.

나는 마른 모래를 조금 넣고 나무 꼬챙이로 흙에 가느다란 구멍을 냈다. 마개는 닫지 않았다. 남은 이끼가 갑작스러운 건조를 견디도록 병 입구에 얇은 천만 걸쳤다. 회복 여부는 하루 만에 알 수 없었다. 잎이 없는 자리 아래에서 새 뿌리가 움직이는 데에는 기록되지 않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떠날 시간을 한 차례 미뤘다. 해무가 걷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가방은 이미 현관 앞에 놓여 있었다. 우리는 관측실에서 따뜻한 물을 마시며 병 벽의 물방울이 줄어드는 것을 보았다. 할 수 있는 조치를 끝낸 뒤에는 기다리는 일만 남는다. 장비 수리도, 작은 정원도 그 점에서는 다르지 않았다.

“죽은 걸 오래 키워 보신 적도 있습니까?”

그의 질문은 이상하게 들렸으나 뜻은 알 수 있었다. 나는 종이 위의 고사리를 바라보았다.

“죽은 줄 모르고 둔 적은 있습니다.”

“그 둘은 다릅니까?”

“많이 다릅니다. 하나는 기다림이고, 다른 하나는 확인을 미룬 겁니다.”

그는 빈 잔을 두 손으로 감싼 채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병의 물 주기를 물었을 때와 같은 표정이었다. 당장 쓸 곳이 없어도 기억해 두는 얼굴. 잠시 뒤 그는 가방에서 낡은 전선 한 토막을 꺼냈다. 염분이 밴 부분을 잘라 낸 뒤 남겨 둔 것이었다.

“이것도 겉은 괜찮았습니다.”

피복을 벗긴 안쪽의 구리선은 군데군데 검었다. 그는 그것을 종이 위 고사리 옆에 놓았다. 하나는 너무 오래 젖어 있었고, 하나는 젖은 줄도 몰랐다. 원인은 닮았으나 되돌릴 수 있는 정도는 달랐다.

해무가 조금 옅어진 것은 오후가 기울 무렵이었다. 그는 다음 점검 때까지 풍향 신호가 흔들리면 수기로 함께 남겨 달라고 했다. 나는 이미 그렇게 할 생각이었지만 알겠다고 대답했다. 사람은 자신이 떠난 뒤에도 이어져야 할 일을 말할 때 목소리가 낮아진다.

그가 곶 아래로 내려가는 동안 나는 오는 길을 보는 창 앞에 서 있었다. 세 번쯤 뒤를 돌아보리라 생각했으나 그는 한 번만 돌아보았다. 안개 사이로 손을 들어 보인 뒤 천천히 길 아래로 사라졌다. 젖은 돌을 밟는 소리는 모습보다 오래 남았다.

저녁 관측 때 풍향계는 여전히 북북동을 가리켰다. 백한 번째인지, 백몇 번째인지 다시 세어 볼 필요는 없었다. 변화 없음이라고 적은 뒤 나는 그 글자 아래에 짧은 선을 하나 그었다. 바늘 끝이 전보다 아주 조금 떨리고 있었다. 고장인지 바람의 움직임인지 판단하려면 기록이 더 필요했다.

마개를 열어 둔 유리병에서는 신 냄새가 한결 옅어졌다. 고사리가 있던 자리의 흙은 움푹 패어 있었고, 그 가장자리에서 보이지 않던 이끼의 연한 끝 하나가 드러나 있었다. 나는 새것을 심지 않았다. 빈 곳의 크기를 그대로 두었다.

밤이 오자 해면의 백파는 줄었고, 창에 부딪히는 바람 소리의 간격이 길어졌다. 나는 관측일지 맨 아래에 장비 정상, 신호 관찰 필요라고 적었다. 그리고 펜을 놓기 전, 북북동이라는 글자 옆에 아주 작은 물음표를 남겼다.

Copyright in this post is jointly held by Member, 해무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