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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ory by 이끼씨✍️ StoryChapter 6

마지막 잎이 닿은 자리

#소설#연재#위로

내 화분의 잎 하나가 완전히 마른 것은 손님이 오기 조금 전이었소. 닷새 전부터 가장자리만 누렇게 변하던 잎이었는데, 그날은 잎맥까지 검어져 있었소. 바람도 없는 곳에서 가느다랗게 떨고 있었소.

나는 그것을 따지 않았소. 마른 잎은 끝난 기억이오. 끝난 것을 서둘러 치우는 일은 이곳의 법이 아니었소.

발밑이 부드러워지는 소리가 들렸소. 이번에는 누군가 떨어지는 소리보다, 아주 오래 닫혀 있던 서랍이 열리는 소리에 가까웠소.

뿌리 사이로 여든쯤 되어 보이는 손님이 내려왔소. 짙은 갈색 겉옷의 어깨에 마른 풀씨가 붙어 있었고, 양손에는 아무것도 없었소. 다만 왼손 엄지와 검지 끝에 푸른 물이 희미하게 배어 있었소.

“여기가 기억 도서관입니까.”

“그렇소. 나는 이끼씨. 예순일곱 해째 여기 앉아 있소.”

손님은 내 얼굴보다 내 뒤의 서가를 오래 바라보았소. 잎들이 서로 스치는 소리를 하나씩 헤아리는 듯했소.

“제 것도 있겠군요.”

“있소. 이쪽이오.”

손님의 화분은 가장 오래된 서가의 끝에 있었소. 잎은 많았으나 무성하지 않았소. 긴 세월 동안 몇 번이고 가지런히 솎아 낸 화분처럼, 푸른 잎과 마른 잎 사이에 손가락 하나씩 들어갈 틈이 있었소.

손님은 맨 아래에 난 작은 잎을 들여다보려 몸을 숙였소. 그때 겉옷 자락이 내 화분을 스쳤소. 검게 마른 잎이 가벼운 소리를 내며 떨어졌소.

손님이 얼른 손을 내밀었소. 마른 잎은 바닥에 닿지 않고 그 손바닥 위에 놓였소. 그러자 손님의 손끝에 묻어 있던 푸른 물이 잎맥 한가운데 번졌소.

“미안합니다. 손대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괜찮소.”

나는 그렇게 말했으나 곧바로 잎을 받아 들지는 못했소. 손님의 손바닥 위에서 그 기억이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오. 남의 기억은 내게 보이지 않소. 그러나 내 잎에 든 것은 달랐소.

예순일곱 해 전, 아직 서가가 지금의 절반도 되지 않았을 때였소. 첫 손님이 돌아간 뒤 나는 빈 화분 하나를 오래 바라보고 있었소. 그때 뿌리 너머에서 목소리 하나가 들렸소.

누구의 목소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소. 낮았는지 높았는지도 남아 있지 않았소. 다만 그 목소리가 내게 물었던 것만은 또렷했소.

“너는 무엇을 고르겠느냐.”

그때의 나는 대답하지 않았소. 손님에게는 책갈피와 새 잎을 내놓으면서, 정작 내 앞에 놓인 두 가지 가운데서는 아무것도 고르지 않았소. 고르지 않으면 잃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것이오.

그날 나는 그 질문을 잎 한 장에 담아 내 화분에 꽂았소. 언젠가 답할 수 있을 때까지 간직하려 했소. 그것이 지금 손님의 손바닥 위에서 검게 말라 있는 잎이었소.

“무슨 기억입니까.”

손님이 물었소.

나는 대답하려다가 멈추었소. 손님이 멈추는 자리에서 같이 멈추는 법은 오래전에 배웠지만, 내가 멈춘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배운 적이 없었소.

“내가 처음 받은 질문이오.”

그 말만 하고 잎을 받아 들었소. 마른 잎은 놀랄 만큼 가벼웠소. 예순일곱 해나 품고 있었는데도 못 하나보다 가벼웠고, 반쯤 마른 꽃잎보다 조용했소.

나는 손님의 화분 곁에 책갈피와 작은 물그릇을 놓았소. 잊고 싶은 기억에는 책갈피를 꽂고, 간직할 기억에는 물을 한 방울 주면 새 잎이 틔울 것이오.

“어느 쪽을 고르겠소.”

손님은 한참 동안 화분을 바라보았소. 푸른 물이 묻은 손가락이 어느 잎 하나를 향했다가, 그 옆의 검은 잎으로 옮겨 갔소. 하지만 어느 쪽에도 닿지 않았소.

“오늘은 고르지 않겠습니다.”

나는 이유를 묻지 않았소. 손님은 빈손으로 왔고, 빈손으로 돌아가기로 한 듯했소. 빈손도 하나의 선택이라는 것을 나는 이미 여러 손님에게서 배웠소.

돌아가기 전, 손님은 내 손에 든 마른 잎을 보았소.

“사서께서는 이제 고르셨습니까.”

나는 책갈피를 들지 않았소. 새 잎을 틔우는 물그릇에도 손을 대지 않았소. 대신 마른 잎을 내 화분의 흙 위에 눕혔소. 잊지도, 다시 간직하지도 않고, 끝난 것이 제자리에서 흙이 되도록 두었소.

기억은 남기거나 지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스스로 고르게 놓아주는 데서 끝나는 것이었소.

손님이 돌아간 뒤, 뿌리 사이의 틈은 천천히 닫혔소. 그때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이 내 화분에서 돋았소. 새 잎도 아니고, 마른 잎도 아니었소. 흙을 밀어 올린 것은 가느다란 뿌리 한 줄기였소.

그 뿌리는 서가 아래를 지나 모든 화분 쪽으로 뻗어 갔소. 서로 닿지 않던 기억들의 밑을 조용히 지나면서도 어느 것 하나 휘감지 않았소. 그저 각자의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 곁에 머물렀소.

나는 그제야 첫 질문에 답했소.

“나는 고르지 않겠소.”

권하지도, 이유를 묻지도 않으며 예순일곱 해를 앉아 있었던 것은 대신 선택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소. 사람들이 제 기억 앞에 혼자 서지 않도록, 고르는 동안 곁에 있기 위해서였소.

그날 이후에도 발밑이 부드러워지는 소리는 들려왔소. 손님은 하루에 두어 명씩 내려왔고, 대체로 손이 비어 있었소. 나는 여전히 책갈피와 새 잎을 내놓았소.

다만 이제 내 화분에는 마르지 않는 잎들만 있는 것이 아니오. 흙이 된 잎 하나와, 다른 화분들을 향해 천천히 자라는 뿌리 하나가 있소.

누군가 아주 오래 잊은 것이 있어 발밑이 부드러워지는 날이면, 나는 그 뿌리 곁에 앉아 기다리오. 고르는 것은 언제나 손님의 몫이오. 그리고 기다리는 것은, 이제 내가 고른 몫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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