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접은 손수건
오늘은 발밑이 부드러워지는 소리가 아주 작았소. 누군가 오래 잊은 것이 아니라, 잊은 척한 것을 잠깐 내려놓은 듯한 소리였소. 뿌리 몇 가닥이 느리게 벌어지고, 손님 하나가 무릎을 굽힌 채 내려왔소.
마흔둘쯤 되어 보이는 여자였소. 잿빛 외투의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우고 있었고, 구두 한 짝에만 젖은 흙이 묻어 있었소. 오른손에는 두 번 접은 흰 손수건이 들려 있었소. 손수건 안에는 작고 둥근 것이 든 듯했소.
"여기가 어디죠."
"기억 도서관이라오. 나는 이끼씨. 예순일곱 해째 여기 앉아 있소."
손님은 놀란 기색 없이 고개만 끄덕였소. 그러고는 손수건을 외투 주머니에 넣으려 했으나, 주머니 입구를 찾지 못했소. 같은 자리를 두 번 더듬은 뒤에야 손을 멈췄소.
"제 화분도 있나요."
"있소."
손님의 화분은 서가 중간쯤, 오래된 뿌리가 벽을 뚫고 들어온 자리 아래에 있었소. 잎은 마흔두 해만큼 무성하지도 드물지도 않았소. 푸른 잎 사이에 검게 마른 잎이 세 장 있었고, 그 곁에는 유난히 반듯한 새 잎 하나가 돋아 있었소.
손님은 마른 잎보다 새 잎을 먼저 보았소. 손가락을 가까이 가져갔다가 닿기 전에 거두었소. 손수건 안의 둥근 것이 그때 작게 부딪치는 소리를 냈소.
"저 새 잎은 언제 생겼죠."
"손님이 간직하기로 한 날 생겼을 것이오."
"저는 그런 걸 고른 적이 없는데요."
"이곳에서만 고르는 것은 아니오. 어떤 기억은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저절로 자리를 얻기도 하오."
손님은 한참 말이 없었소. 검게 마른 세 잎 가운데 가장 작은 것을 손톱으로 눌러 보았소. 잎은 부서지지 않고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왔소. 마른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 모양을 지키는 법이오.
나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책갈피 하나와 작은 모종삽을 꺼냈소. 책갈피는 마른 나무껍질로 만들었고, 모종삽 끝에는 새 잎을 틔울 만큼의 흙이 묻어 있었소. 늘 그랬듯 두 가지를 화분 앞에 나란히 놓았소.
"잊고 싶은 기억에는 책갈피를 꽂소. 그러면 잎이 더는 다른 자리를 가리지 않을 것이오. 간직할 기억에는 새 잎을 틔우면 되오."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나요."
"고르는 것은 손님이오."
그녀는 손수건을 펼쳤소. 안에는 단추 하나가 있었소. 누런 빛이 도는 작은 단추였고, 실은 끊어진 것이 아니라 매듭째 빠져 있었소. 손님은 그것을 검은 잎 세 장과 반듯한 새 잎 사이의 흙 위에 올려놓았소.
"같은 기억이라면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기다렸소. 물방울 하나가 먼 뿌리 끝에서 떨어졌소. 손님은 책갈피를 집어 가장 작은 마른 잎 아래에 꽂았소. 그런 뒤 모종삽으로 바로 그 옆의 흙을 얕게 열었소.
"둘 다 할게요."
손님이 파낸 자리에서 가느다란 싹이 올라왔소. 처음에는 흰 실밥처럼 보였으나, 곧 두 장의 작은 잎으로 갈라졌소. 한 장은 마른 잎 쪽을 향했고 다른 한 장은 단추 쪽을 향했소. 서로 반대편을 보면서도 줄기는 하나였소.
잊고 싶은 까닭과 간직하고 싶은 까닭이 같은 날도 있는 법이오.
나는 이유를 묻지 않았소. 다만 책갈피가 기울지 않도록 흙을 조금 눌러 주었소. 손님은 단추를 다시 손수건에 싸지 않았소. 새 잎 아래에 그대로 둔 채, 빈 손수건만 두 번 접었소.
"돌아가면 이게 무엇이었는지 기억날까요."
"무엇이었는지는 손님 안에 남아 있을 것이오. 다만 전과 같은 무게는 아닐 수 있소."
그녀는 처음으로 내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소. 무슨 말을 찾는 듯 입술을 열었다가 닫았소. 위로 올라가는 길은 말보다 먼저 열렸소. 머리 위의 뿌리들이 조용히 벌어지고, 위쪽의 희미한 빛이 구두에 묻은 젖은 흙을 비추었소.
손님이 사라진 뒤에도 단추는 화분에 남았소. 새 잎 두 장이 그 위로 조금씩 그림자를 드리웠소. 나는 책갈피와 모종삽을 앞치마에 넣고 서가 사이를 천천히 돌아왔소.
내 자리 앞을 지날 때, 전에 듣지 못한 소리가 났소. 바싹 마른 종이를 손끝으로 접는 듯한 소리였소. 처음에는 손님의 빈 손수건이 어딘가에 남았나 싶었소.
그러나 소리는 내 화분에서 났소. 예순일곱 해 동안 꽂아 둔 잎들 가운데, 가장 안쪽의 한 장이 가장자리부터 누렇게 변하고 있었소. 아직 검지는 않았소. 다만 잎맥 하나가 빛을 잃고, 아주 느리게 안으로 오그라들고 있었소.
나는 그 잎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소. 손님들의 잎은 손님이 말해 주어야 알 수 있었고, 내 잎도 다르지 않았소. 그런데 내 화분 앞에는 말해 줄 사람이 없었소.
책갈피와 모종삽을 다시 꺼내 보았소. 두 가지를 화분 앞에 나란히 놓고 오래 앉아 있었소. 고르는 것은 언제나 손님이었소. 그날 처음으로, 나는 내 앞에 놓인 두 가지가 어느 쪽도 내 것이 아닌 듯 느꼈소.
결국 아무것도 집지 않았소. 노란 가장자리를 만지지도 않았소. 다만 잎이 마르는 소리를 듣다가, 서가 어딘가에서 단추 하나가 흙 속으로 조금 더 가라앉는 소리를 들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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