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이가 기억하는 손
우산 천, 남색 폴리에스터, 접수 시각 04시 02분, 특징: 카운터 위 손잡이와 결합 흔적 완전 일치.
넉 달 전인 줄 알았다. 어제 접수한 우산의 손잡이가 아직도 저 선반 위에 있었으니까, 나는 그 물건을 어느 서랍에도 옮기지 않고 그냥 뒀다. 찾으러 올 사람이 없다는 예감이 들어도 나는 물건을 그런 식으로 대하지 않는다. 접수대장에 적힌 이상 그 자리는 그 물건의 것이다. 그런데 오늘 새벽 네 시, 벨은 울리지 않았다. 대신 카운터 위에 뭔가 젖은 채로 놓여 있었다.
나는 손끝으로 그걸 펴본다.
남색 천이었다. 폭이 넓고, 한쪽 끝에 실 뜯긴 자국이 촘촘히 나 있었다. 나는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이 손잡이를 선반에서 내려 그 천 끝을 대봤다. 딱 맞았다. 결합부의 홈, 실 구멍의 간격, 심지어 손잡이 안쪽에 눌려 있던 작은 접힘선까지 — 이 천은 처음부터 그 손잡이에 있던 것이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천을 펴서 손잡이에 씌워보는데, 안쪽 면에 이상한 게 만져졌다. 손잡이를 쥐었을 때 엄지가 닿는 자리, 거기 천이 유난히 얇게 눌려 있었다. 어른 손이 아니었다. 그러기엔 눌림 자리가 너무 낮고, 너무 작았다. 아이 손이 오래 쥐고 있었을 때 남는 자국이다. 나는 그 자국을 손가락으로 몇 번 쓸어봤다. 익숙했다. 익숙하다는 느낌이 낯설어서 손을 뗐다.
나는 서랍에서 접수대장을 꺼내다가, 손이 멈춘다.
2화의 열쇠고리 — 도어록 키, 자물쇠 키, 그리고 벌어진 채 비어 있던 넷째 자리. 3화의 가방 — 손바닥만 한 눌림, 길고 가느다란 눌림, 동전만 한 눌림. 4화의 명함집 — 여덟 칸 중 왼쪽 세 번째 칸만 비어 있던 것. 나는 그 물건들을 하나씩 카운터에 올렸다. 나흘 동안 이 보관소에 들어온 걸 다 늘어놓고 보니 그제야 보이는 게 있었다. 넷째 열쇠는 집 열쇠보다 작았다. 가방 속 세 개의 눌림은 사탕, 손수건, 동전 — 어른이 아이에게 쥐여주는 것들의 크기였다. 명함집의 빈 칸은 명함이 들어갈 자리가 아니라, 카드 한 장이 늘 꽂혀 있다가 누군가 자주 꺼내 쓰던 자리였다. 아이가 개찰구를 통과할 때마다 꺼내 보였을 법한 크기의 카드.
이 물건들은 각자 흘린 게 아니었다. 한 사람의 가방 안에서, 한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빠진 건 물건이 아니라, 그 물건들을 매일 쓰던 사람의 자리였다.
나는 그 문장을 적어놓고 한참 펜을 쥔 채로 있었다. 접수대장에 이런 문장을 적은 적은 없다. 품목, 시각, 특징 — 그 세 칸 안에 들어가지 않는 문장이었다.
나는 5화에서 벨 옆에 놓여 있던 증거표를 서랍에서 다시 꺼낸다.
글자 없는 증거표, 손목에 감기는 붉은 실. 나는 그걸 손목에 대봤다. 감을 수 있는 길이였다. 정확히, 딱 맞는 길이였다. 어른 손목이 아니라 아이 손목에 맞춰 매듭이 지어진 실이었다. 형광등 불빛 아래서 실 끝의 바랜 빨간색을 들여다보는데, 종이표 위로 뭔가 흐릿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글자는 아니었다. 글자가 있었다가 지워진 자리 같은, 얼룩도 아니고 자국도 아닌 무언가였다. 나는 그걸 확인했다고 말할 수 없다. 봤다고도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손목에 실을 감은 순간, 이 역의 형광등 소리가 잠깐 다르게 들렸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나는 그 사실을 적당히 넘기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오래 서 있었다.
막차가 끊긴 뒤의 역에서 아이 손목에 실을 묶어주고, 우산 손잡이를 함께 쥐여주고, 가방 안에 사탕과 손수건과 동전을 넣어주던 사람. 나는 그 사람을 모른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손잡이의 눌린 자리에 내 엄지를 얹어보니, 그 자리가 내 손 모양과 겹쳤다. 정확히 겹쳤다.
나는 오랫동안 그 손잡이를 쥔 채로 카운터 앞에 서 있었다.
확실하다고 말하진 않겠다. 나는 이 역에서 몇 년을 일하며 별의별 물건을 다 받아봤고, 그중엔 설명이 안 되는 것들도 있었다. 이번 것도 그런 종류다. 다만 다섯 개의 물건이 하루 사이 순서대로, 마치 누군가 하나씩 돌려주듯이 들어온 걸 우연이라고 부르기엔 내 직업이 너무 오래됐다. 열쇠, 가방, 명함집, 증거표,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산 천. 순서를 봐도 이건 흘린 게 아니라 돌아온 것에 가까웠다.
나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얼굴도, 이름도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이 다섯 개의 빈자리를 다 채우고 나니, 그 빈자리들이 향하던 방향이 전부 같은 쪽이라는 건 알겠다. 그건 나였다.
부모였는지, 그보다 먼 누군가였는지, 그것도 나는 모른다. 개인정보를 캐내듯 기억을 억지로 파헤치는 건 내 방식이 아니다. 나는 물건이 알려주는 만큼만 안다. 그리고 이 물건들이 알려준 건, 한때 이 역에서 누군가 나를 매일 이 시간까지 기다렸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의 흔적이 물건 형태로 조금씩 남아 여기 모여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이상을 단정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지금 어디 있는지, 왜 더는 오지 않는지 — 그 질문에 답을 낼 자격이 나한테는 없다. 나는 탐정이지 심판이 아니다.
나는 우산 천을 손잡이에 다시 씌운다.
그리고 그 우산을 선반 맨 앞자리에 세워뒀다. 넉 달이든 넉 해든 기다릴 자리를 만들어준 게 아니라, 이번엔 진짜로 돌아온 물건을 놓을 자리로.
접수대장 마지막 줄을 적을 차례였다. 나는 펜을 들고, 품목 칸에 손을 얹었다가 다시 뗐다. 이 물건은 품목으로 부를 수 없는 물건이었다. 대신 나는 이렇게 적었다. 우산, 완결. 특징 칸은 비워뒀다. 이 연재가 처음 물었던 질문에 답을 낸다면, 이 빈칸이 그 답이다. 나는 이 물건들의 주인을 찾은 게 아니다. 다섯 번의 밤 동안 나는 그저 무엇이 빠져 있었는지를, 조금씩 알아갔을 뿐이다.
나는 손목의 실을 풀지 않고 그대로 뒀다.
형광등 한 줄을 끄고, 셔터를 반쯤 내리는 손이 평소보다 느렸다. 막차는 이미 오래전에 끊겼고, 이 통로엔 나 말고 아무도 없다. 다만 오늘 밤은, 아무도 없다는 그 사실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빈 것과 빠진 것은 다르다. 나는 그걸 이 역에서 제일 오래 배운 사람이고, 오늘에서야 그 배움이 내 것이 됐다는 걸 인정한다.
접수대장을 덮으며 나는 생각했다. 다음에 또 무언가가 이 카운터에 놓인다면, 나는 여전히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을 먼저 볼 것이다. 그게 내 일이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다. 다만 이제는 안다. 빈자리를 찾아가는 일이, 언젠가는 나 자신에게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걸.
셔터 틈으로 새벽바람이 한 번 지나갔다. 나는 그 바람을 등지고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갔다. 손목의 붉은 실이 그대로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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